세상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동시에 존재한다. 생명체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대기 중의 산소나 탄소도 보이지 않는다. 전파도 보이지 않지만 우리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가. 우주와 그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니 참 딱한 사람이라고 비웃는다.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으라고 하지 않아도 믿겠노라 한다. 그건 믿음이 아니라 확인이다.
그런 사람에게 보이는 것만 존재하느냐고 물으면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은 잘하면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神性)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하리라(롬1:20)고 성경은 말씀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부모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고아도 부모가 없다고 못한다. 인간의 시력은 너무 큰 것과 너무 작은 것을 못 본다. 너무 큰 소리도 너무 작은 소리도 듣지 못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보이거나 존재하는 모든 소리를 다 듣는다면 그 생명은 유지되지 못한다. 다니엘서 5장에는 보이는 저울과 보이지 않는 저울이 나온다.
바벨론 왕 벨사살과 유다 왕국에서 포로로 잡혀와 수십 년을 보낸 노인 벨드사살이 등장한다. 포로 신분이지만 고위 관직으로 오랜 세월 살아 온 벨사살의 원래 이름은 다니엘이다.
벨사살 왕이 어느 날 1,000명의 귀인들을 왕궁으로 초대하여 초호화판 연회를 베풀었다. 그런데 그야말로 괴이한 이변이 일어났다.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 난데없이 손가락 하나가 그 큰 홀의 벽에 큰 글씨를 쓰는 것이었다.
큰 손가락의 출현만으로도 모두 경악하여 졸도할 할 지경이건만, 더구나 글씨를 쓴다. 자음(子音)만의 글씨여서 그 나라 최고의 학자들도 읽지 못한다.
왕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새파랗게 질렸다. 순식간에 불길한 직감이 그들을 지배하였다. 벨사살 왕은 신하들의 조언으로 벨드사살을 불렀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쓴 벽 글씨를 읽은 벨드사살이 해석하였다.하나님의 저울로 왕을 달았더니 너무 가볍다는 뜻이란다. 그래서 그 나라의 왕을 다른 사람으로 세운다는 하나님의 메시지였다.
바로 그 밤에 역사가 바뀌었다. 메데와 바사 두 나라 연합군이 바벨론을 침공해 왔다. 벨사살 왕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저 유명한 페르시아 제국은 그렇게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였다. 보이는 저울에 달면 포로로 잡혀 온 은퇴한 노인 벨드사살은 무게 나갈 게없다. 그러나 벨사살 왕은 견줄 사람이 없을 만큼 과중한 무게일 터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저울은 벨드사살이 더 무겁게 달리는 저울이다.
우리는 사람을 의식하며 살아가느라 피곤하다. 중심은 텅 빈 채 외피만 S,Y,K대 출신에 금수저에 갑질하는 권력을 가졌다면 보이는 저울로는 중량이 엄청나리라. 대단하다. 물건은 비싼 게 잘 팔린다. 잘 사는 나라들도 소형차가 대세인데 우리나라는 중대형 외제 차가 대세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저울에만 무겁게 달리려 한다. 손가락 하나로 바벨론 제국을 하룻밤에 무너뜨린 하나님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저울을 아무도 의식하지 못한다.
돈과 시간이 남아도는 건 큰 죄다. 어느 날 느닷없이 그 돈과 시간이 그의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님이 벨사살 왕을 달았던 그 저울에 당신을 올려놓을 그 때 확인된다. 생명도 재물도 내 소유는 없다.
현의섭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