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의 ‘태초에’는 하나님의 천지창조 보이는 세계, 시공간이 존재하는 ‘3차원의 세계’ 창조를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창세기 1장 창조 전에 이미, 요한복음 1장에서 말하는 ‘태초에’의 세계인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창조(?)하셨고 그곳에 존재하고 계셨습니다. 그 세계를 ‘창조’라고 말해야하는지는 신학적 과제가 될 수는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은 두 세계 모두에 존재하시고, 두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4차원의 세계’라고 통칭하기도 합니다. 물론 물리학적으로는 11차원까지 존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며 보이는 천지창조의 세계, 우리가 사는 세상을 ‘3차원의 세계’, 우리 눈으로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4차원의 세계’라고 정하고 글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만드신 창조세계를 어떤 법칙과 규칙에 따라 움직이도록 만드셨고, 인간은 그 법칙 아래에서 살도록 규정(?)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3차원의 세계는 중력의 법칙이 정해져 있습니다. 제가 손에 들고 있던 무선 마우스를 놓으면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주 높은데서 몸을 놓으면 아래로 떨어져 죽게 된다는 하나님의 법칙 아래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깊고, 영성이 강하다고 그 법칙을 뛰어 넘을 수는 없습니다. 위반하면 탈이 납니다. 보이는 세상은 공기가 있어야하고, 쉼을 쉬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3차원 세계’의 법칙입니다.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셨던 예수님도 3차원 세계 아래에서는 그 법칙에 순종하며 사셨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예수님께 높은 데서 뛰어 내리면 하나님이 받아 주실 것이라며 유혹하기도 했습니다. 기적이라는 것이 있으니 불가능 한 것은 아니지만 3차원의 법칙을 뛰어 넘는 그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4차원의 세계를 바라보면, 분명 4차원의 세계에는 맞는 법칙을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차원의 세계’는 ‘영의 세계’입니다. ‘영’은 보이지 않는 존재성을 가지기에 ‘영’이신 하나님은 3차원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영’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는 두 세계인 3차원과 4차원의 세계에 모두 공존하며 정해진 하나님의 법칙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3차원의 세계와 4차원의 세계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두 세계에 영향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성장시키고, 믿음을 강하게 하고, 믿음을 순결하게 만들어 신령과 진정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은 영성’, ‘아름다운 인성’인 것입니다. ‘은사’가 ‘영성’의 기준과 가치가 아닙니다. 은사는 영성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영성이 깊고 넓다는 것은 믿음이 깊고, 신령과 진정의 태도가 넓다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만이 영성과 인성을 아름답게 만드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나관호 목사 (뉴스제이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