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9편은 그 서두에서(1-4절)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내 말을 들으라는 강조로 시작된다. 5절을 주목하면 죄악이 나를 따라다닌다, 즉 인간의 생애가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고백이다. 내가 죄악에 접근해가지 않더라도 죄악이 나를 따라오니, 죄악이 나를 지배하려고 적극공세를 펴고 있으니, 그 죄악이 나를 에워싸니, 그리하여 온갖 환난의 늪에 빠진다고 하였다.
사실 죄란 하기 싫은 걸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자 하는 멈추지 않는 욕구의 유혹이다.
목사나 신부나 스님 등 성직자가 되면, 성직자로 수십 년을 살아 세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인물들이라서 죄악이 그의 신분을 의식하여 거리를 두리라 생각한다면 끔찍한 오해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맹공 한다. 더러운 귀신 한 마리를 쫓아냈더니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온다고 주님이 말씀하신바가 있다. 주님의 엄중한 경고다. 1968년 39세로 암살당한 미국 흑인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역시 암살 당한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재클린 여사가 7회에 걸쳐 인터뷰한 내용에서 LA의 치과의사 부인과 수요일마다 밀회를 즐겼다고 폭로한바 있다. 심지어 <나에겐 꿈이 있다>는 그의 대표적 설교가 있던 그 전날 밤에는 한 호텔에서 섹스파티를 즐겼다는 내용이 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그 저명한 킹 목사의 명예에 흠집을 내려는 게 아니라 <죄악이 나를 따라 다닌다>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절대적임을 일깨우고 싶어서다.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더하여 고매한 신분일수록 죄악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공격해 댄다.
신라시대의 원효 대사는 과부가 된 요석공주와 동침하여 설총을 낳고는 스스로 파계승이 되어 승복을 벗었다.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가 탈속한 김성동의 첫 소설 <만다라>에는 승려가 창녀와 동침하는 내용이 전개된다. 중세 천주교 수도원의 지하에서 영아들의 뼈들이 발견된 사례는 널리 알려져 있다.
죄악은 이토록 치열하게 사람을 따라다닌다. 늘. 인간의 본능적 욕망은 죄악과 긴밀한 관계, 아니 필연적인 관계에 있다. 청나라의 서태후는 17세에 후궁이 되고 23세에 여황제가 되었다. 27세에 과부가 된 후 그녀는 매일 밤 미소년들과 청년들로 수청을 들게 하였는데, 다음 날 아침이면 그들의 입을 막기 위해 모두 살해하였다. 식탐 또한 엄청나서 여행을 떠날 때는 열차의 4개 칸을 주방으로 사용할 정도였다. 한 끼 식사비로 천 명이 먹을 비용을 지출하였다. 그녀가 병들자 대신들과 태자들이 치유를 비는 기도를 하였다.
서태후는 말했다.‘나는 죽을만한 죄를 졌느니라. 나는 죽어야 한다’고. 하기는 하나님을 제대로, 열정적으로, 헌신적으로 믿던 다윗 왕도 충성을 다하는 30명의 최측근 부하 중 한 명인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를 침실로 끌어들였고, 자기 죄를 은폐하려고 그 충성스러운 우리아를 살해하였다. 성경에 기록된 그 많은 다윗의 스토리와, 155편 중 73편의 다윗의 시편들은 그의 하나님 경외와 신뢰의 신앙수준을 충분히 가늠케 한다. 그럼에도 죄악이 그를 찾아와 덮쳤다. 그런 죄악을 저지를 사람이 절대 아닌 듯싶은 신앙이건만 이를 어찌하랴. 인간은 어떤 대가를 지불해도 자기 죄를 속량할 길이 없다(8절).
현의섭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