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이 시대를 일컬어서 물질문명의 발달에 비해 인간의 존엄함에 대한 의식이 상대적으로 빈곤한 시대라고들 한다. 물질문명을 발달시킨 장본인들은 사람일진데 정작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남의 소중함을 간과하고 살아가는 반증이라고 본다. 소중함을 모를 때 우리는 자학과 가학을 오가며 자신과 동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부하직원의 소중함을 모를 때 상사는 손쉽게 오만과 갑질의 행동을 보이고 동료의 존엄성을 무시 할 때 자신의 욕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성폭행 같은 유혹에 빠지며 또래의 소중함을 모를 때 청소년들은 집단 괴롭힘의 재미에 탐닉하는 것이다.
자산에는 주식이나 부동산처럼 보이는 자산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산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사람이 자산임을 깨닫고 사람의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다. 사람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는다는 것은 사람의 참 모습 즉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본래의 모습을 깨닫는 것일 것이다.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사람 본질을 깨달아 온전함에 이를 때 삶은 빛과 질서의 평안에 이르게 될 것이다.
본론
그렇다면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데 필요한 출발점은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첫째로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믿음이란 무엇보다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신뢰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무서워한다. 각자가 자신의 죄를 용서 받는 것만을 생각하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고귀한 존재임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오직 사랑이시다 라고 말할 때면 언제나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그대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줄로 생각합니까?”(롬 2:3) 공의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한 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롬 2:6) 하지만 올바로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은 사랑의 반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을 나타내시는 다른 면의 방법이시다.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난 사람의 삶의 경험을 묘사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나는 것 자체가 형벌(심판)이고 고통스런 삶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그 사랑을 떠나는 사람은 심판을 경험한다. 아버지를 떠났을 때 탕자가 경험한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삶의 현실이 그것이다. 탕자가 경험한 삶의 고통은 심판 경험이었고 탕자가 그 경험을 하고 있었을 때도 아버지는 여전히 탕자를 그리워 하셨고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다. 세상에서 사랑받는 사람은 빛이 나고 사랑받을 때 그 사람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세례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나님은 예수님께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사랑의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원초적인 믿음과 여기에서 사람의 가치에 대한 진정한 인식으로 예수님의 공생애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이러한 믿음이었다.
둘째로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은 삶에 대한 신뢰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삶을 복되게 하셨음을 믿고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믿는 사람은 각자의 삶을 신뢰한다. 삶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삶은 상황과 조건을 초월한 행복을 열리고 삶을 신뢰하는 사람들에 주는 삶의 보답이다. 그렇다 장기적인 코로나19로 상황이 아무리 가혹해보여도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삶은 절대 축복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기대하지 못한 복으로 갚아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셉은 형제들 때문에 온갖 고생을 하고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형들이 이집트에 팔아넘긴 비극에서도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창 45:5) 사도 바울도 고백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삶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환경과 조건을 초월한 행복 경험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에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롬 8:28) 사람은 소중하게 대접을 받을 때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 삶에 대해 하나님의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소중한 대접을 받는다. 삶의 소중한 대접을 받을 때 우리는 각자가 소중한 존재임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따라서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삶에 대한 절대 긍정이야말로 사람의 가치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지름길인 것이다.
결론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조사한 초등학생 장래희망 1위는 운동선수라는데 부자가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이다. 얼마 전에는 도둑질을 해서라도 부자가 되겠다는 초등학생 이야기를 듣고 아연(啞然)한 적도 있었다. 물론 물질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 6:24)고 하셨을 때 하나님 중심으로 살 것을 강조하신 것이지만 이 말씀에는 물질의 힘이 하나님과 맞먹을 만큼 강력하다는 의미와 함께 물질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고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의미가 함의되어 있다고 본다.
끝으로 물질(돈)은 삶의 중요한 자산이 분명하고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가려면 최소한의 물적 토대가 마련되어야 하기에 신앙과 영성의 이름으로 물질을 무시하는 것은 위선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고린도후서 4장16~18절 말씀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람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사명이다.
이선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