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지만, 사랑받는 것에서 멈추려고 한다면 어떨까요? 사랑을 받기위한 자격은 사랑할 줄 알아야합니다. 성경에서 사랑의 대상은 ‘누구든지’이지만, 우리의 사랑의 대상은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고,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할 것입니다. 사랑의 조건은 ‘무조건‘ 사랑하는 것입니다. 13절에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고, 핍박 할 때에는 현실적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것,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랑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채찍질 한 그 사람을 사랑했고, 마지막 창으로 찌른 군병을 향해 용서하셨습니다. 납득이 되지 않아도, 이해가 되지 않아도 사랑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거듭난 것의 증거를 성경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14절에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내 기준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나눈다면 과연 거듭났다고 말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해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적 구조는 사랑입니다. 사랑 없는 전도, 사랑 없는 교회모임, 사랑 없는 은사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본질은 사랑의 구조여야 합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임재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거듭났다면 하나님의 유전자가 이식 되었습니다. 마귀는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려면 기초가 잘 이루어 져야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가장 중요한 본질을 우리는 놓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움과 사랑의 사이에서 선택은 없습니다. 미움은 이유를 불문하고 사망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미움은 분열이고, 파괴입니다. 사랑 위에서 기도할 때 역사가 나타나며, 사랑 위에서 기도할 때 은혜가 나타납니다. 과연 우리가 어디에 서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내 중심으로 사랑의 본질에 서있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고백하지만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거짓 고백이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습관, 전도하는 습관, 말씀 보는 습관 너무나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가는 습관을 갖는 것입니다. 미움을 통해서 신앙은 파괴되고 모든 관계가 파괴됩니다.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 바로 미움이며,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힘입니다. 이제는 사랑으로 행동해야합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사랑하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자식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자동으로 됩니다. 사랑하는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악으로 물들었기에 그 이상은 안 됩니다. 미움은 뼈를 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영,혼,육이 건강해 지는 방법은 사랑으로 미움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정말로 고차원적인 신앙은 미워하는 사람을 안보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두번 시도해보다가 포기하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주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려고 애를 쓰십시오. 할 수 없는 것을 진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은혜를 몇 번이나 구해보셨습니까? 사랑의 행동으로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기십시오. 의지가 발동이 되어야 합니다. 말과 생각으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사랑의 문제가 해결 될 때 무엇이든지 기도할 때 그 구하는 바를 하나님께 받을 수 있습니다. 원수 없는 인생이 진정한 성도의 멋진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은 계명의 완성입니다.
이주부터 한 달 동안 아직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 할 수 있도록 주야로 기도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우리 열방교회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