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신축년 새해에는 코로나 상황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움을 구하는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확진자와 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사망자들은 애도 받지도 못하고 가족과 이별을 할 수 밖에 없기에 유가족들의 가슴은 죄책감으로 멍들어 있고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의 피 말리는 하루하루는 이어지고 방역수칙을 지키려고 애쓰는 국민들의 피로는 도를 넘었기에 전도서 표현대로 “만물이 다 지쳐있음을 사람이 말로 다 나타낼 수 없”을 정도다.(전 1:8) 코로나19는 그동안 인류가 당연시 하고 살아온 삶의 방식을 근본에서부터 바꾸면서 모든 일류가 안전하게 달려온 고속도로의 길이 갑자기 뚝 끊겨진 경험 앞에서 누구라도 당황하면서 마치 달려왔던 길이 끝나버린 형국 앞에서 어디쯤에 있다는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일부 국가에서 시작된 백신접종도 이런 상황의 종식을 담보하지 못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변종 바이러스가 계속 출현하고 있기에 전문가들은 올 한 해도 코로나 바이러스와 씨름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두려워하는 인류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 6:22) 새해에는 우리에게 성한 눈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의 열두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을 똑같이 탐지하고도 그 땅을 “사람들을 삼키는 땅”으로 보는 눈과 “젖과 꿀이 흐르는 땅”(민 13;27)으로 보는 눈으로 나뉘었다. 그 뿐 아니라 앗수르 대군의 말과 병거로 사마리아 성읍을 포위한 것을 보고 절망하는 눈이 아니라 온 언덕에 불 말과 불 병거가 둘러서서 보호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경이로운 눈이 필요하다.(왕하 6:8-19)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속담은 바라지 않는 불행한 상황에 처했는데 뜻밖에 그 상황이 하려던 일을 이루는 기회가 된다는 뜻일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안타깝게도 인간들의 과학기술문명을 자랑하는 문명사회의 한 가운데서 초래한 불행이지만 이 불행은 인류가 그 동안 통찰로만 간직하고 있던 것을 구현할 최적의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통찰로만 간직하고 있던 것이란 다름 아닌 영적 성숙과 영성의 삶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욕망에서 영성으로 인간중심과 과학중심에서 만물과의 공생으로 이기적 생존에서 이타적 상생으로 회심할 수 있는 성한 눈이 절대 필요한 기회이다.
우리들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있다. 구태 의연한 눈으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불행과 좌절 속에서 과거의 삶을 그리워 할 것인가? 아니면 성한 눈으로 코로나 상황을 극복하고 근본적 회심을 통해서 성경적인 영성의 문화를 창출할 것인가? 지금 전 세계의 방역당국은 인류가 당연하게 행해왔던 일상 적이던 일들에서 멀리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인류를 영성적 삶으로 이끌어가고 있기에 이 상황은 결코 재앙만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 당연히 코로나 팬데믹은 인류에게 재앙의 측면이 있다. 전 세계 확진자가 1억 명에 가까워 졌고 사망자도 200만 명을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인명 희생뿐이 아니라 경제적 손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서 물리적으로라도 영성의 삶을 추구하게 된 것은 인류가 새로운 문화 창조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의 종식은 당연히 백신이나 치료제가 해결을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코로나를 퇴치한다고 하여도 인류가 근본적으로 인간 중심의 삶의 방식에서 달라지지 않으면 언젠가 또 다른 바이러스의 공격은 있을 것이다. 즉 성경적 가치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고 영성의 삶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때 더 나아가 이성의 오만과 과학기술의 절대성과 개발의 극대화 및 인간의 욕망성취를 자제하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섭리를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또 다른 바이러스의 공격을 대비하며 인류의 피해를 최소화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코로나 상황에서 요구되는 삶의 방식은 영성의 삶을 지향한다고 생각하면 고통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감당 할 수 있는 일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영성의 삶이란 세상적인 삶의 반대의 의미로써 포기하고 금욕하고 홀로 침묵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로 큰 기쁨과 풍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요즘처럼 자발적 포기와 금욕과 독거와 침묵을 강요받은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소수의 수도를 위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삶의 이상이나 기독교 성도들만 추구하는 영적 덕목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인류 전체에게 공통으로 요구되는 삶의 모습이며 어찌 보면 지구촌 전체가 거대한 코로나 수도원이 되어있기에 영성적 삶의 출발인 자발적 포기와 금욕과 독거와 침묵의 삶을 살다 보면 마침내 코로나 상황은 재앙이 아니라 미래의 안전하고 풍요로운 새로운 문화 창조를 위한 온 인류에 대한 섬세한 배려였음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코로나19는 그동안 인간 중심에서 습관으로 굳어진 이성의 오만과 과학기술의 욕망과 개발의 가치에서 공존과 공생의 영성적 가치의 새로운 삶의 습관으로 변환의 요구이며 인류문명의 치유를 위한 전면적인 대수술이 진행되고 있기에 우리는 이 시대를 분별하면서 성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역량[力量]이 사명이다.
이선구목사
취재: 국제선교신문 기자
기사입력 : 21-08-05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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