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우리의 머리에는 예수님의 피가 떨어지면서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에 했던 그 “내가 다 이루었다”의 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인생의 모든 죄가 다 지워졌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우리는 죄인의 모습 그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지워지고 죄 사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죄를 심판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고 씻어내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속고 살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현상을 보지 말고 진리의 실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입을 열어 기도해야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내 것입니까? 주님 것입니까? 능치 못 하심이 없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인생의 무거운 짐은 다 주님의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강압적으로 우리의 짐을 빼앗지 않으십니다.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행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내려놓고, 먼저 두드리고, 먼저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초청하고 계십니다. 본문 1절에 12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주님이 초청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회복과 변화를 허락하시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성경에 주님을 만난 사람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만나면 인생이 살아납니다. 우물가로 물 길러 갔던 사마리아의 여인에게 주님이 찾아오셨고, 여인의 인생은 살아났습니다. 기쁨과 감격을 얻고 주님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수년간 귀신들려 꼽추가 된 여인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고통 속에 살아갔을까요? 주님은 그 여인을 축복하시고 안수하셨을 때 놀라운 회복이 일어났습니다. 그 여인을 묶고 있던 귀신이라는 세력이 떠나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몸을 묶고 있던 뼈가 펴졌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영성회복이 나타나고 주님을 만나면 육체적인 회복이 일어납니다. 죽음조차도 주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살아나게 하시는 분입니다. 교회를 왜 다녀야 합니까? 살아나기 위해서입니다. 회복되어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갈릴리 어부인 뱃사람들은 힘도 없고 천대받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거룩한 사도들로 바뀌었습니다. 다윗은 조그만 목동이었습니다. 양치는 재주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나 하나님을 만남으로 인생의 변화를 받아 이스라엘의 역사상 위대한 왕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주님이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전적이 초라한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만남으로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주님을 만난 증거는 살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회복되고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주님을 제대로 만나면 살아나고 회복되고 변화되어야합니다. 삶의 현장은 주님을 만나는 현장이어야 합니다. 주님이 초청하시는 이유는 요청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에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가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회복되어 변화된 사람은 가라고 하십니다. 보내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을 중심으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향력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성도는 운명을 바꾸는 전달자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노라고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오라”의 초청을 받고 변화를 경험하여 누룩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어서 나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에게 천국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안식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 단순한 논리를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인생의 참된 평강, 참된 축복은 예수 안에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잘 하는 것,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자랑만큼 가장 위대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잠잠하면 그들은 망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일하실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교회는 “오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라”를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힘 있는 성도의 비결은 “가라”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오라”에 주저앉지 마시고, “가라”에 순종하시는 열방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