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는 문화 위의 하나님(God above Culture) 입장이다. 크라프트는 그의 저서 「 Christianity in Culture」에서 이러한 입장은 이신론(Deism)과 서구 문화 속에 있는 보편적인 사고라고 하며 아프리카 문화 속에서 지배적으로 발견되는 견해라고 보고 있다. 하나님은 문화 위에 그리고 문화 밖에 계시며 더 이상 인간의 삶에 관심을 가지시지 않는다고 본다. 크라프트에 의하면 이러한 입장은 이신론과 서구 문화 속에 있는 보편적인 사고라고 말한다. 토마스 제퍼슨은 이신론자들은 예수의 신성을 믿는 기독교의 신앙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 인본주의자들(humanists)이다.
이신론을 주장하다보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부인하든지 아니면 “영원한 원리”라는 식으로 하나님을 비인격화시키든지 한다. 그들은 신자들이 교회, 기도, 예배와 같은 기관들과 의식들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 없는 것으로 또는 해로운 신화로 여긴다.
넷째는 문화 위에 그러나 문화를 통한 하나님(God-above-but-through-Culture) 입장이다.
하나님은 문화 위에 계시지만 그 문화를 인간과의 교제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견해이다. 즉 하나님을 초월자와 절대자 되신 하나님으로서 문화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동시에 문화적 구조를 비록 인간의 죄로 인하여 왜곡되긴 하였지만 본질상 중립적인 도구 또는 환경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문화는 하나님과 인간 또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모든 만남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며, 모든 인간적 이해와 성숙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으로 보고, 사람들이 가고자 하는 곳에 이르도록 고안된 여러 형태들로 구성된 일종의 ‘도로 지도’(road map)이다.
채은수는 「신학지남」의 “선교와 문화”에서 인간이 문화적 형태들(forms), 양태들(patterns), 과정들(processes)로부터 사용되는 것은 죄의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그러므로 문화의 그 어느 부분도 순수한 동기로 인간에 의해 쓰여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고(고후 6:2). 그리고 구원 받은 인간은 문화적 형태들, 양태들, 그리고 과정들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 더구나 인간이 변하기 때문에 문화적 형태들과 과정들은 언제나 변화를 겪는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결과로 인하여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문화를 변화시킨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문화 밖에 계시고 인간은 문화 속에 있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담고 있는 문화적 환경을 그의 인간과의 만남의 장소로 선택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는 수단으로 인간의 불완전하고, 유한하고, 제한적인 문화를 철저히 사용해 오셨다. 하나님은 자유롭게 인간의 문화를 사용하는 것을 선택하시며 어떤 점에서는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문화의 능력에 자신을 제한시키시는 것을 선택하셨다. 하나님은 문화 위에 계시지만 인간과의 만남을 위해 문화를 기꺼이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교차문화적 선교사는 인간으로 하여금 죄로부터 구원을 얻게 하는 성경적 진리를 의미 있게 전달하기 위해 인간의 다양한 문화를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