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휴가철이 다가왔다. 물론 대한민국이 이미 선진국이 되었으니 어느 정도 살만한 사람들은 딱히 너도 나도 휴가를 떠나는 복잡한 시기보다 일 년 중 언제라도 휴가를 떠나는 세상이 되었다. 이처럼 먹고 사는 것이 다급하지 않은 세상이 되고 보니 얻은 것과 편리한 것도 많지만 사람끼리 아옹다옹 살면서 별것도 아닌 것을 별것으로 나누고 배려하고 살았던 것들을 너무 많이 잊어버렸다.
그 중에 하나가 언제 부터인가 너나 할 것 없이 무엇인가를 채우려는 소유욕이 강해지고, 비워짐의 미덕을 잊어버리고 사는 안타까운 세상이 되어있다. ‘비우다’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 따위가 들어 있지 아니하게 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비움'을 의미하는 케노시스( 헬라어: κενοσις; 영어: kenosis )는 기독교 신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로서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비우는 것이고 하나님의 신적 의지에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빌립보서 2:7에서 ‘자기를 비워’에 해당하는 단어 ‘케노시스’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감추임으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의 직과 작정의 수행에 자발적으로 복종하신 것이다. 이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이며,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형태로 내려오신 사건을 강조한다. 케노시스는 초대 교회에서부터 현대 신학에 이르기까지 깊이 있는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특히, 오늘날 사회의 윤리적, 기독교 사회적 문제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케노시스의 영성이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큰 의미를 지니며, 사회적 불평등, 개인주의, 물질주의가 만연한 오늘날에 케노시스의 영성은 특히 기독교인인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단순한 신학적 개념을 넘어서 기독교인의 삶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케노시스의 신학적 근거는 주로 신약성경의 빌립보서 2장 5-8절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과 동등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로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기록되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발적인 겸손과 희생을 강조하며,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설명한다. 초대 교회 교부들은 이를 통해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과 연약함을 이해하고 경험하셨다고 보았으며, 성도들에게는 깊은 위로와 희망을 제공했다.
현대 신학에서도 케노시스는 여전히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 디트리히 본회퍼와 칼 바르트와 같은 신학자들은 케노시스를 인간 존재와 사회적 책임을 연결하여 해석했다. 본회퍼는 케노시스적 삶이란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삶이라고 주장했으며, 이는 나치 정권 하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타인을 돕기 위해 헌신한 본회퍼의 삶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나아가 바르트는 케노시스를 통해 하나님의 자기계시와 인간의 응답과 신학적인 논의의 깊이를 제공하여 주었다.
끝으로 케노시스 영성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을 제시하며 나를 비우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섬김을 채워서 인간 존재의 깊은 진리를 깨닫고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케노시스를 본받아 일상 속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나가며 기독교 공동체와 사회를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이선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