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순종(順從)이란 ‘순순이 따름’ 이라고 나와 있다. 히브리어 ‘솨마’는 순종하다로 ‘하나님(신)께 귀를 빌려주다’라는 고전히브리어에서 유래한다. 사막의 교부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테베의 요셉은 이런 교훈을 남겼다. “하나님께서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시는 세 가지가 있다. 인내로 얻은 병, 자랑하지 않는 업적, 그리고 온전한 순종. 이 셋 중에서 제일은 순종이다.”『교부들의 영적 금언집』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뜻을 어긴 사울에게 분명히 밝힌 것처럼, “순종은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 15:22b) 하지만 순종에 대해 말할 때 잊지 말아야 할 분명한 사실이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순종은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지 힘센 사람이나 권력 즉 세속 권력이든 종교 권력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사람이나 권력에 대한 순종이 사람을 노예로 만들고 불의한 구조를 강화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순종은 자유와 해방을 위한 혁명(a revolution)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순종의 모범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최고의 덕목이기도 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의 어둠속에서 울려 퍼진 “아버지,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세요.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는 기도는 순종의 극치였다. 훗날 바울은 예수님의 순종을 이렇게 정리했다.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셨다.”(빌 2:8) 예수님의 순종은 어머니 마리아의 순종을 빼닮았고 배운 결과이다. 유대의 관습으로는 결혼하기도 전에 아들을 낳으리라는 천사의 고지를 받았을 때 마리아는 경악했고, 천사에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라며 되물었다. 천사가 “더없이 높으신 분의 능력이 그대를 감싸”면 가능하다. 라고 하자 마리아는 마침내 받아들인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눅 1:38) 율법에 따르면, 마리아의 혼전 임신은 간음의 증거였고, 따라서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그녀의 순종은 목숨을 건 순교적 순종이었던 것이다.
성경의 인물 중에서 순종하면, 아브라함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백세에 낳은 아들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한 이야기에 실존주의자인 키르케고르는 『공포와 전율』이라는 책 제목을 달았다.
키르케고르는 개인이 삶의 여러 길 가운데 하나를 완전히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고 믿었는데, 그의 이러한 생각은 모든 실존주의 사상과 저술에 기초가 되었다. 그는 〈철학 단상〉에서 그리스도교가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모습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그리스도교가 자유의지를 전제로 존립하는 것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도대체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런 순종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삼십 년 이상이 걸린 순종실천의 열매였다. 아브라함의 삶에는 몇 번의 변곡점이 있었다. “내가 보여주는 땅으로 가라”(창 12:1)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살고 있던 땅, 태어난 곳, 그리고 아버지 집을 떠난 것이 시작 이였다. 아브람의 순종의 역사는 이처럼 떠남과 실천이 함께 시작된다. 진정한 순종은 결코 관념이 아니다. 익숙한 곳에서 길들었던 곳에서 안주하던 곳에서 떠나는 모험이었다.
결론적으로 순종은 생각으로 되지 않는다. 인고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성령 안에서 생각하고, 성령의 인도로 사는 실천을 꾸준히 해야 가능한 성령 하나님의 은총의 현실이다. 그러면 이러한 실천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5) 오직 말씀과 기도로 가능해 진다. 성도의 삶은 ‘거룩’의 실천이다. 거룩은 우리 안에 현존하시며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 하나님께 순종 한다는 지향의 상징 즉 마음의 표시이다. 말씀과 기도로 내 내면의 생각들을 알아차려 질 때 거룩한 행동이 가능하고, 세상적인 의식의 강에 떠다니는 생각들이 떠나고 지워진다.
따라서 욕심의 생각들이 떠나고 비우는 만큼 순종이 쉬워진다. 레마의 말씀을 경험하는 만큼 순종의 깊이도 넓어진다. 무엇보다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의 인도로 살고자 할 때 순종의 삶이 가능해진다.
이선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