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움이 온 세상에 충만한 가정의 달 5월이 왔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바다의 날로 5월이 끝난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천국에서 가장 큰 사람은 누구입니까?” 어린이 하나를 곁으로 부르시더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가 돌이켜서 어린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 18:3)”
어떤 사람이 천국과 지옥을 견학했다. 놀랍게도 천국과 지옥은 별 차이가 없었다. 음식도 똑같았고, 사용하는 숟가락도 똑같았다. 숟가락이 팔보다 훨씬 긴 것도 똑같았다. 그런데 지옥에서는 팔보다 긴 숟가락으로 자기 입에만 넣으려 하는 통에 아무도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천국은 달랐다. 모든 사람이 배부르게 먹었다. 긴 숟가락으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먹여 주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천국은 배려와 협동이 특징인데, 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을까?
이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알아야 한다. 천국 주변에는 잔디가 있고, 정원수가 가지런히 손질되어 있고, 맑은 물이 찰랑거리는 수영장이 있고, 집 내부를 최고급 인테리어로 꾸미고, 최고급 오디오 시설에 영화관까지 갖춘 호화주택이 천국일까?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럭셔리한 숙박시설을 갖추고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는 환상적인 리조트가 천국일까?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천국은 물질의 풍요로 치장하거나 만들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천국은 “영적 차원에서 열리는 삶의 현실”이다. 그래서 복음서에는 천국을 하늘나라라고도 하고 하나님 나라라고도 한다. “하늘”은 영적 영역에 대한 상징이며,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 천국은 영적 차원과 관련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알려면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가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의 현실은 크게 나눠 둘이다. 하나는 사회생활이며 다른 하나는 가정생활이다. 사회생활이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현장이라면, 가정생활은 세상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안정과 안식이다. 사회생활과 관련된 외부현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노동 등 다양하다. 사람마다 정도는 달라도 사회현실에서 받는 영향은 특히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모르는 사회현실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자녀 문제는 한국인의 삶의 모든 층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현실이다. 통계에 의하면 OECD 국가 중에서 단연 교육비 지출이 상위에 랭크돼 있다.
사회현실이 세상에 태어날 때 누구에게나 운명처럼 주어지는 실존적 조건이라면, 가정현실은 생의 오랜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인격적 조건이다. 인격은 일차적으로 성장과정 중에 부모와 가족을 통해 형성되며, 사회화과정 중에 유. 초. 중. 고. 대학교. 종교 등의 영역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에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다. 안타깝게도 가정현실에는 자신이 바꾸지 못하는 고정관념과 가정현실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쓴 뿌리 감정의 응어리와 주도적으로 해체하지 못하는 부정적 의지와 고집 등이 갈등구조로 엉켜서 한 사람의 인격으로 형성되어간다. 이렇게 형성된 인격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삶의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가정현실에서 출발하여 성장과정과 사회화과정에서 사회현실의 영향을 받아 한 개인의 인격이 되어서 그 인격이 다시 가정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가정현실과 사회현실은 서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된다. 나이가 든 어른일수록 한번 잘못 형성된 인격은 간격이 커지며 복잡하고 무겁고 편파적으로 고착화 되어 가정현실과 사회현실에서 반복적으로 뒤엉켜 악영향을 주고받을 때 한 개인의 인격체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을 지라도 독선과 교만을 일상적으로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끝으로 상호 존중하는 인격체로 가정 천국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린이들처럼 영성이 작동해야 한다. 어린이들은 공부라는 생활현실은 있지만, 어른처럼 고뇌와 갈등의 뿌리인 생존에 전투적이지는 않다.
어린이의 마음은 어른보다 훨씬 정직하고 가벼우며, 단순하고 밝다. 그래서 어린이는 어른보다 영성이 왕성하게 작용하는 조건을 갖고 있다. 아이들은 유연하다. 싸웠다가도 금세 장난치며 화냈다가도 금세 웃는다. 물론 어린이들이 영성을 자각하고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어른들보다 영성이 역동적으로 작용할 조건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른들에게 영성은 생활에 매이고 현실에 압도당한 까닭에 현실의 지배를 받으며 영성조차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욕망을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마음과 감정을 거스르는 현실은 외면하는 것이다. 용서 대신 비난이 잦아지며 용서와 화해 대신 분리가 깊어지고 삶의 평화는 사라진다. 이와는 달리 영성에 뿌리내리면 맘에 들지 않는 현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최악의 현실에서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찾아 최선의 행동을 한다. 따라서 예수님 영성에 뿌리내린 사람은 분리의 위기에 빠진 삶을 하나로 통합한다.
천국은 교리와 신조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 들어가는 막연한 미래가 아니다. 예수님 믿음의 영성의 삶을 통해 펼쳐지는 아름다운 현재의 삶이며, 가정 천국을 맛보고 사는 것이다.
이선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