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평균수명은 82.7세, OECD 6위로 이미 최상위권이다. 그리고 평균수명 상승속도가 매우 빠르다. 2007년만 해도 OECD 중하위권 수준(79.2세)이었다. 1997년엔 그냥 하위권(74.7세)이었고. 불과 10년 사이에 이렇게 상승한 것이다. 이런 사실이 꼭 좋은 현상만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이 세계 최악의 고령화국가가 되어가는 이유 중에는 세계 수준의 평균수명도 어느 정도 기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건강해서 오래 산다는 건 분명 긍정적인 일이며 건강해서 오래 산다면 노화도 과거보다 약해졌을 것이므로 고령화로 제일 문제가 되는 부양비 문제도 은퇴연령 및 연금 지급연령을 늦추는 조치를 시행하면서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대한민국이 늙어가고 있기에 고령화시대에 늙어감이라는 불가피한 자연적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담론을 시작할 때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늙고 자연의 섭리에 인간은 미약한 존재이다. 처음부터 노인이었던 사람은 없고 누구나 처음 늙고 지금의 나이도 처음 겪어보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늙은 모습 앞에서 조용히 독백하며 한탄하지만 늙어감에 대해 편히 이야기하고 불안과 불편을 터놓고 더 나은 노년에 대한 지혜를 구하기는 쉽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통상적으로 80대에 자연사한다고 가정했을 때 아직은 갈 길이 남아 있다면 어떻게 아름답고 곱고 품위 있게 늙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회는 국민의 법적·사회적 나이를 만 나이로 통일하기로 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한국식 나이를 비롯해 국제통용기준인 만 나이와 연 나이(현재연도-출생연도, 일부 법령에서 채택) 계산법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여러 법적·사회적 나이 계산법이 혼용되면서 국민들이 행정서비스를 받거나 각종 계약을 체결 ·해석할 때 나이 계산에 대한 혼선이 발생했다. 지난 12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공약에 따라 법적·사회적 나이 계산법을 만 나이 기준으로 통일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인수위는 우선 민법과 행정기본법에 만 나이 계산법 및 표기 규정을 마련해 법령상 민사·행정 분야의 만 나이 사용 원칙을 확립하고 연 나이 계산법을 채택하는 개별법도 정비할 계획이며 법무부도 만 나이 통일 공약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인수위에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사법 관계에서 만 나이 사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을 위해 사법의 기본법인 민법에 만 나이 적용 원칙이나 표기 방법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서 법제처는 2023년 까지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올해 중으로 행정기본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란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닥칠 노년의 시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를 고민하며 한권의 책을 소개한다. (곱게늙기/ 송차선 신부 /샘터) 이 책은 송차선 신부가 시니어아카데미 요셉대학에서 노년의 성도들을 위해 ‘곱게 늙기’를 강의 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은 바야흐로 고령화시대가 열렸고 늙어감이라는 불가피한 자연의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담론을 시작할 때에 노인들은 연극으로 치면 인생 무대의 마지막 장에서 마무리가 감동적으로 끝난다면 공연 전체가 찬란하게 빛날 것이기에 노년을 준비하며 읽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시인은 90편 10절에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라고 하였다. 사람이 통상적으로 80대에 자연사 한다고 가정했을 때 아직은 갈 길이 남아 있다면 사람마다 어떤 삶을 살고 싶고 자기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분명히 다르지만 곱게 늙는 것을 목표로 자신을 향한 채찍의 의미는 분명히 동일 할 것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마음은 차츰 닫히고 이에 따라 친구를 사귄다는 것도 쉽지 않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사귀는 것이 조심스러워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될 때까지 서로를 탐색하는 기간도 길다. 이 세상에 내 맘에 드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점점 마음은 닫힌다. 물론 사람들이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은 상처를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괜히 마음을 열었다가 상처를 입으면 자기만 손해라는 것이 살아온 삶에서 학습되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도 완전할 수 없고 부족하고 실수할 수도 있고 잘못할 수도 있고 죄 지을 수도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문이 닫혀 있는 방이라면 그것을 열지 않고서는 그 누구든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마음의 문도 마찬가지여서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아무도 마음 안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마음의 문을 닫으면 고통스러운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다.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기 때문에 문을 열지 않아 고통스러운 것은 자기가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과 같다. 반대로 마음을 열면 내가 세상으로 나갈 수도 있지만 세상도 내 마음의 방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세월이 가면 싱싱했던 것도 시들기 마련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소멸하게 되어 있다.
가을이 되고 잎이 떨어져야 새싹이 난다. 인생도 그런 것이다. 내가 늙어서 시들어가고 마침내 죽어야 후대들에 의해서 이 세상이 아름답게 꾸며질 것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많은 경험을 하지만 죽음을 경험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분명히 자신의 삶이 영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원할 것같이 살아간다. 언제일지 모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찾아올 죽음을 마치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생각해야 지금의 삶에 충실 할 수 있고 타인을 수용[受容] 할 수 있게 된다.
끝으로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세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졌으며 나 역시 예외 없이 이 땅에서 물러나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 열린 마음으로 오늘을 받아드리면 현재의 삶에 충실해 질수 있고 마침내 그날이 오더라도 두려움이나 미련이 적을 것이다. 상대방의 의견이나 형편을 acceptance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유한성에서 무한성으로 승화[昇華]되기에 수용[受容]하는 마음이 사명이다.
이선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