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다움을 상실한 시대를 걱정한다. 성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죄로 죽었던 내가 예수님의 생명의 십자가로 회복시키신 하나님의 형상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이것이 성도의 정체성이 아니던가? 죄인 된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내 죄가 용서받았음을 확신하고 그 공로로 다시 살게 된 하나님의 자녀가 성도의 정체성일 것이다.
지금도 교회는 세상의 희망일까? 이 질문에 예라면 그것은 성도가 세상의 희망이란 의미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서 번번이 실망하는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 그들을 선택했던 유권자인 나의 판단 착오를 인정하고 기대의 부질없음을 자위한다. 코로나 시대의 어려움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과 북한의 ICBM 발사 소식을 더해 경제문제. 기후 위기, 인구 절벽, 지역 소멸의 사면초가 같은 현실 가운데 복음만이 세상의 희망이라 고백하며 다시 한 번 복음의 순전함을 회복하고 굳어진 습관과 낡은 전통에서 과감히 벗어나서 성도다움을 회복 할 때 교회를 향한 세상의 인식이 새로워질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라는 말씀대로 안으로는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며 밖으로는 개혁된 교회와 성도다움의 개성을 회복 할 때 희망이 현실이 될 것이다. 개성에는 경험개성과 본질개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경험개성은 여러 가지 삶의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개성이며 선천적이기보다 후천적이며 본질적이기보다 우연적(accidental)이며 심층적이기보다 표층적이다. 청소년들의 개성을 판단하는 MBTI에 따르면 열여섯 가지 개성의 유형이 있고, 애니어그램에 따르면 아홉 가지 개성의 유형이 있다. 누구나 개성을 추구하는 심리에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가 들어있다. 하지만 인정을 받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개성은 사라진다. 이것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다른 사람에 의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타인에 의존하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가 아닌 것처럼 세상의 시선과 인정을 바란다면 성도의 개성은 진정한 개성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본질개성은 그 개인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본질개성이 있는 사람은 그 사람 특유의 이미지를 갖는다. 그러므로 성도의 개성이란 본질개성의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다.
성도의 개성은 하나님의 이미지 곧 하나님의 형상이며 즉 본질개성은 하나님의 형상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 갇히지 않는 개성이다. 그런 점에서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는 경험개성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본질개성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성도개성의 회복과 성도다움의 회복이며 참자아의 향기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즘 그리스도인들에게서는 본질개성의 향기를 맡을 수 없다. 본질개성의 향기는커녕 탐욕스러운 이미지와 배타적이고 뻔뻔하고 완고하며 고집불통 이미지에 수구적 이미지가 기독교인들의 개성으로 굳어져서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러한 이미지를 제고하고 반성해서 본질개성과 성도다움을 회복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자신만의 향기를 갖고 개성 있게 모범을 보여 주셨다. 예수님은 욕망에 뿌리내린 경험개성을 포기함으로써 본질 개성(essential individuality)을 나타내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본질개성이 돋보이는 사건 중 하나가 안식일에 있었던 일화이다. 배고픈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었을 때 바라새파 사람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하고 비난하자 예수님은 다윗과 그 일행이 굶주렸을 때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들만 먹게 되어있는 제단 빵을 먹은 일화를 꺼내면서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생긴 것이 아니다.”(막 2:28)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에 적잖이 놀라곤 했다. 그 당시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즉 개성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막 1:22) 이런 예수님의 개성은 타인의 시선이나 인정에 의존하는 경험개성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본질개성이었건 것이다. 그렇다면 타자의 시선과 무관한 예수님의 개성은 어디서 온 것이며 어떻게 생긴 것일까?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시니까 하는 식으로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예수님의 신성(神性)에서 대답을 찾지 않아야 한다. 이런 예수님의 용기 있는 본질개성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 조건에서 형성된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본질개성은 광야에서 사십 일 금식기도를 하는 동안 악마에게 시험받는 훈련과 성령의 인도에 순종에서 형성된 것이다.
끝으로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는 너나 할 것 없이 성공과 축복 부흥과 성장을 우선하고 예수님의 본질개성을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한국교회와 성도들을 이기주의 집단으로, 언행일치가 되지 않고 헌금 강요와 목회자의 사리사욕이 심하다고 평가하는 시선과 눈총을 무시하고는 교회 사명의 회복과 성도의 본질개성의 회복은 요원하다. 더 늦기 전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험개성에서 벗어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본질개성을 회복해야 한다. 예수님의 이미지 즉 하나님의 형상에 뿌리내린 신성한 본질개성 회복만이 이 시대의 교회가 세상의 희망임을 증명하는 성도다움의 사명이다.
이선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