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그룹 > 문화예술 > 무명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고후 6:9) - 화성 수촌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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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탐방기] 무명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고후 6:9) - 화성 수촌 교회
 
   · 게시일 : 2020-09-01 13:34:19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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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시에 가면 유명한 교회가 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만세 사건으로 말미암아 많은 고난과 핍박이 있었던 교회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다들 제암 교회를 떠 올릴 것이다. 그러나 제암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수촌 교회가 바로 그 교회이다. 3.1독립 운동 때 제암리 학살 사건과 같은 맥락에서 일본에 의해 만행이 저질러진 곳이다.
 그러나 제암 교회에 비해서는 덜 알려진 교회이기도 하다. 지금 이 교회를 담임하는 조인연 목사가 우리 코로나 19 박멸을 위한 전 국토 순례 기도단에게 다음과 같이 교회의 역사를 설명해 주었다.
 수촌 교회의 시작은 아펜 젤러 선교사의 전도를 받은 김응태 목사(당시 성도)가 주도로 1905년 3월5일에 정창하의 집에서 7명이 모여 예배드림으로 수촌교회가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1907년 수촌리 큰말 소재의 초가 15칸을 매입해서 예배당으로 수리 개조하여 사용하였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시대인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수촌 교회를 담임했던 교역자는 김교철 전도사였다. 그와 수촌 교회 교인들을 중심이 되어 수촌리에서 만세 사건이 일으켰다. 수촌리 만세 사건은 4월 2일 장안면과 우정면 주민들이 합세하여 벌인 격렬한 독립만세 시위가 그 도화선이 됐다. 4월 3일 오전 장안면 수촌리와 석포리 주민들은 독립 만세를 부르며 면사무소로 몰려가 건물을 파괴하였다. 그리고 우정면 주곡리 일대의 시위대와 쌍봉산에서 합류하여 집회를 가진 뒤 우정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화수리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면사무소가 파괴된 것은 물론 주재소가 불에 타고 일본인 순사까지 살해를 당하자, 일본군 검거반은 수촌리를 그 진원지로 파악하고, 그 곳의 천도교 남양 교구 순회 전교사 백낙열과 감리교 전도사 김교철 등을 체포하기 위해 4월 5일 새벽 3시 반경에 수촌리를 급습하였다. 이 과정에서 검거반은 천도교 전교실과 수촌교회 예배당은 물론 민가에도 불을 질러 마을 전체가 소실되었다.
 이때 온 마을이 불로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도 김 의태 집사님은 자신의 집에 난 불을 끌 생각도 하지 않고 교회로 달려왔다. 교회가 불길에 휩싸일 때 교회에 보관하고 있는 궤를 들고 나왔다. 이 궤가 복원된 옛 수촌 교회에 아직도 보관되어 있다. 그 궤 안에는 3.1운동에 참가하겠다는 결의서와 함께 교인 교적부가 들어 있었다. 3.1운동 참가 결의서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한 귀한 문서이다. 아울러 교적부는 그 당시에 하늘 생명책과 같이 여기는 귀한 보물(?)이었다. 이 일로 15명의 교우들이 서대문 형무서로 연행이 되었다. 그 당시에 배재 학당 학생이었던 차인범(19살)은 옥중에서 순교를 하게 된다. 그렇게 끌려왔던 14명은 나중에 애국지사로 인정을 받게 되었단다.
 3.1 독립 운동으로 큰 시련을 겪은 수촌교회(교인 다수가 구금, 투옥, 도주, 행방불명 등)는 큰 상처를 입고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교회 존폐 위기에 까지 내몰렸다. 그런데 뜻있는 분들의 주선으로 1932년 현 교회의 위치인 수촌리로 이전한다. 일제 강점기 말기의 극심한 교회 탄압 속에서도 꾸준히 교회를 지켜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예배당은 불에 타 1922년 4월 아펜젤러와 노블 선교사의 협조로 8칸의 초가 예배당을 마을에 새로 세웠고, 1932년 1월 수촌리에 교회를 세워 지금의 자리에 세워지게 됐다. 옛날 수촌교회는 현재의 예배당 옆 자리에 복원돼 있다. 1965년 6월 15일 건축 봉헌된 교회 예배당(1986년 5월 20일 향토유적 제 8호로 지정되었다.)
 조국의 광복을 맞이하여 수촌교회는 새로운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인한 전란 속에 전국이 폐허가 되었으나 수촌교회는 무사하게 된다.
 교회 설립에 주도한 김응태 목사님의 후손과 3.1운동을 주도한 김교철 전도사님의 후손이 지금도 수촌 교회를 지키고 있단다. 지금의 수촌 교회는 새벽마다 3.1운동을 기념해 31번의 타종으로 마을을 깨우고 있단다. 그 종지기들이 바로 이들의 후손이 담담하고 있단다. 역사는 있되 전통이 없는 교회가 아니라 역사와 아름다운 전통을 지닌 이 교회야 말로 무명 자 같으나 유명한 교회 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주소: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1리 674번지    담임목사:조인연
* 전화: 031) 351-2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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