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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탐방기] 기독교는 우리 민족이 살 길 -강화 교산 교회-
 
   · 게시일 : 2020-08-01 12:11:33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둘째 며느리가 섬기는 경서 교회 목사님은 결혼식 주례도 해 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몇번 만났는데 지금은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코로나 19로 인해 한국에 머물고있는 우리 내외를 점심 대접하시겠다고 숙소로 와서 강화도로 가자고 했다. 특별히 정해 놓은 음식점은 있냐고 했더니 그냥 바다 바람 쐬는 것이 좋다고 해서 강화도에 최초로 세워진 교산교회를 방문하고 식사를 하자는 제안에 선득 허락해 주어서 교산 교회로 가게 되었다.

약 한 시간 정도에 도착한 교회는 농어촌 교회답지 않게 아주 깨끗해 보였다. 1층 까페에서 마침 이교회를 담임 하시는 박 기현 목사님이 몇 분의 감리교 목사님 담화를 나누는 중이라 이층 예배당과 기념관을 먼저 둘러보았다. 그리고 카페로 돌아와 교산 교회의 역사에 대해 듣게 되었는데 교회 앞에 배 모형에 갓을 쓴 사람이 한 여인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는 조형물에 대한 설명이다.

제물포에서 주막집을 운영하던 이 승환이 존스(Missionary George H. Jones, 1867-1919) 선교사로 부터 복음을 받았다, 이승환은 주막집을 그만두고 고향 강화도 서사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면서 늙으신 모친을 전도하여 존스 선교사를 초청하여 세례를 받기로 했단다. 존스 선교사는 조선 사람의 복장을 하고 은밀히 강화를 찾아왔지만 다리목 마을의 김 초시 양반 가문에서 서양 오랑캐가 우리 땅을 밟으면 쫓아가서 그 집을 불태워 버리겠다고 반발을 했다.

그리고 이 승환이 살았던 지역 유지이며 서당 훈장이었던 유학자 김 상임도 반대해서 육지에 발을 붙일 수 없었다. 그러자 이승환은 한 밤중에 어머니를 업고 들판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고 산을 넘고 해안 갯벌을 지나 존스 목사가 있는 배로 갔다. 보름달이 환히 빛나는 밤에 존스 선교사는 달빛에 예문을 비추어 읽으면서 이승환의 어머니에게 선상에서 세례를 베풀 수 있었다. 이것이 강화에 최초로 복음의 겨자씨가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후 권사(감리교)의 직임을 받은 이 승환은 매서인(성경을 보급하는 사람)이 되어 인근 도서 지역을 돌면서 개척 전도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반대했던 서당 훈장이었던 김 상임이 존스 선교사에게서 한문 성경을 받아 읽고 기독교야 말로 민족의 살길임을 깨닫고 개종을 하게 되었다. 이승환이 권사로, 김 상임을 전도사로 임명했던 것이 1898914일자 대한 그리스도인 회보에 게재되었을 정도이다.

그러나 김 상임은 감리교에서 신학을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을 세 번째 후보자이었으나 열병에 걸린 교유들을 심방하다가 감염되어 목사 안수받기 한 달 전 55살을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 별세 기사는 1902년 신학 월보에 게재되었다. 한 알의 밀알이 죽을 때 많은 열매를 맺듯이 교산 교회는 강화의 다른 지역 섬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전초기지가 되었으니 그 흐름은 크게 세 줄기로, 첫 줄기는 홍의(홍의 교회)를 거쳐 강화읍으로 해서 남쪽으로, 둘째 줄기는 고부(고부 교회)를 거쳐 중서부로, 셋째 줄기는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섬인교동도로 연결되어 교동 교회가 세워져 강화는 선교 개시 10년 안에 강화 전역에 교회가 설립되는 결과를 얻었으며 현재는 150여개의 감리교회가 있는 섬이 되었다.

특별히 홍의 교회 설립은 김 상임이 예수를 믿는다는 소식에 이웃 홍의(홍우(鴻羽), 홍해(교산 교회 기념관))마을에서 훈장을 하던 박능일이 김상임에게 따지러 왔다가 오히려 예수를 받아들이고 마을로 돌아와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부터 홍의 교회가 시작되었다. 이때가 1896년이다. 마을 훈장인 박능일이 개종을 하고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리자 홍의 마을 토착 유지들이개종하게 되었고, 1년 만에 교인 수는 80여 명에 이르렀다.

 홍의 교회는 선교사의 도움 없이 토담집 예배당이 세워졌고, 서당을 학교로 바꾸어 신식 교육이 시작되었다. 초기 홍의 교회의 교인들은 7명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예수를 믿는 한 형제로 돌림자를 쓰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돌림자는 한 일()자였다. 이는 성을 바꿀 수는 없으니 이름의 끝 자를 바꾼 것이다.

자는 처음 믿었다혹은 한 가족이다라는 의미로 돌림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에서 중요한 단어라고 생각한 7가지 글자를 선택해 7명 교인들이 이 글자를 하나씩 뽑았다. 그 글자는 능력 능(), 믿을 신(), 공경 경(), 받들 봉(), 순수할 순(), 하늘 천(), 빛 광() 등이다. 이들은 가운데 글자를 이것으로 하고 끝은 한 일자로 맞췄다.

그래서 나온 이름이 박능일과 같이 개명 운동은 강화도의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쳐 초기 교인 중 자로 끝나는 이름을 지닌 인물은 읍으로 가서 강화 중앙 교회를 세운 주 선일, 교동에 들어가서 교동 교회를 세운 권신일, 석모도와 주문도로 들어간 윤 정일, 강화중부와 남부 선교 사역을 개척한 종 순일과 황양일 모두가 일자 돌림 홍의 교회 교인들이었다.

 특히 권 신일은 교동도에 개척하니 교동 교회의 시작이었다. 이 개명 영향으로 교동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이름을 믿을 신() 자를 돌림으로 했다.

그렇다. 강화도의 성시화는 요한복음 1224절에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했듯이 모든 열매는 희생을 통해서 얻어진다. 나무에 열매가 맺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많은 수고와 눈물과 희생을 통해서 얻어진다. 이 세상에 희생이 없는 성공이란 없다.

희생이 없었는데 성공했다면 그것은 우리 앞에 있던 누군가가 희생했기 때문이다. 시편 1265-6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라고 했다. 모든 위대한 성취는 누군가 희생을 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강화도에 현재140여개의 교회가 세워졌다는 기적의 현장에 이렇게 보이지 않는 이 승환과 그의 모친 김 상임 전도사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다는 결론이다.

      

교회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교산1504-2(전화: 032) 932-5519

 

김선훈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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