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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탐방기] 강화도 교동교회 방문기
 
   · 게시일 : 2020-06-01 23:17:17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510일 동기 목사님 내외분이랑 선배 목사님 내외분이 만나기로 약속한 김포로 아침에 출발했다. 선교사로 북해도로 갔다가 우즈베키스탄으로 중앙아시아를 떠돌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동기목사님은 나보다 10살이나 위라 이미 은퇴하고 호평에 아들 내외랑 살고 있다.

이제 장거리 운전은 힘이 드는지라 내가 모시고 김포로 가 이미 은퇴하고 섬기던 교회와는 상당이 떨어진 김포 신도시에 살고 있다. 거의 12시가 되어 약속 장소에서 만났다. 나는 선교사로 30년을 해외 생활 을하는 동안은 한국에 와도 3주정도 길면 주일 3번 보내고 한 달 이내로 출국을 해야 하는데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한국에 생각지도 않게 장기간 머물게 되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이런 좋은 만남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서로 인사하니 25년 만에 거의 만났다.

그동안의 세월이 얼마나 빨리 지나갔는지 새삼 느끼며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기왕 이렇게 만났으니 가까운 강화도로 나들이를 하자는 건에 합의를 보았다. 그럼 어디로 갈 것이냐는 이야기에 내가 평소에 가고 싶어 했던 초기 한국 기독교 유적지가 있는 강화도로 가기로 했다. 나는 마음으로 언제나 한국 초기 한국 기독교 유적지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는데 이렇게 시작하게 되어 감사히 생각했다. 사실 강화도는 어릴 때 배를 타고 왔던 곳인데, 이제는 강화 대교가 땅과 섬을 연결하여 차로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보통 강화도라고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강화도, 석모도, 교동도 세 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강화군에 속한 행정 구역이었다. 그 중에 교동교회가 있는 교동도에 있는 교동 교회로 가기로 합의를 보았다. 교동 교회는 1899년에 세워진 교회였다. 그러니까 아펜젤러 언더우드 선교사가 제물포 항에 발을 내 디딘 해가 1885년이니 따지면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파된 지 불과 14년만의 세워진 교회이다. 한국에 방문하면 군 선교회 사무실이 있고, 세계 한인 기독교 총 연합회 사무실이 있어 교통의 요충지인 종로 5가에 가면 연동 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의 설립도 1894년이니 교동교회의 설립은 굉장히 오래된, 벌써 12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이다. 강화대교를 지나 교동대교를 넘어서야 교동교회가 나오는데 다리가 없던 시절에 어떻게 이 외진 곳에 교회가 세워졌을까?

자료에 보니 그 당시에 교동도는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지금은 북한 땅이지만 황해도 연백평야와는 불과 3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는 거리이다. 그 당시에는 해주와 강화도와 인천으로 사람과 물자를 나르는 교통의 요지였다고 한다.

교동도가 유명한 이유는 연산군의 유배지가 있는 곳이다. 조선의 10대 왕이었던 연산군이 재위기간 12년 동안 무오사화(1498, 연산군 4), 갑자사화(1504년 연산군 10) 등을 일어나 많은 사람을 잔인한 형벌로 참극을 벌였던 임금이다. 결국 중종반정(1506918)으로 폐위되었다. 그리고 유배된 곳이 강화도였고, 다시 교동도로 이배되었다.

지금도 강화군 교동도(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고구리 산 233)에 유배된 지 2개월 뒤인 그 해 음력 11월에 역질을 앓다가 116일 역질, 화병 등의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이 뒤쪽 언덕에 고향에서 예수를 영접한 지 3(1899) 도 안 된 권신일과 부인(브리스길라)이 초가집 한 채를 마련하고 전도하기 시작한 것이 교동교회의 역사의 시작이었다.

지금 우리가 다녀온 그 교회당은 사실 현재의 건물은 원래 예배당은 아니다. 원래 교회를 개척한 권신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 중에 상룡리에 살던 박성대, 박형남 부자에 의해서 원래 교회의 대들보와 교회 물품을 가지고 와서 1933년에 이곳에 재건축한 것이다.

교동읍 교회가 상룡리로 옮겨진 이유는 그 당시 교동읍내 교인들이 줄어들고 대신 상룡리 교인들이 늘어나면서 상룡리에서 처음 믿은 박성대, 박형남, 박이남 3부자 위기에 처한 읍내 교회를 위해 땅(6백평)을 교회 앞에 있는 종루와 종교회당 입구 문 앞에서 예배당 내부에 있는 올갠 교동 교회당 내부 모습교회에 기부하여 예배당을 상룡리로 옮겨 건축했단다.

특히 이곳의 박씨문중 교인들은 그 믿음이나 선행에서 교동사람들의 본이 되었다. 우리가 방문을 해서 보았던 물건 가운데 그 당시에 사용했던 물건은 교회당 앞 종루에 매달려 있는 종이다. 이 종에 대한 사연은 일제 강점기 막바지에 철물을 헌납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을 즈음에 일본 경찰이 강제로 이 교회당의 종을 떼어 가지고 나루터까지 끌고 나오고 있는데 지나가던 어떤 노인이 당신이 하나님의전에 있는 종을 떼 가니 하나님이 노하셔서 배를 뒤집을께요라고 하는 말에 겁에 질린 경찰은 종만 나루터에 두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래오고 있다. 이 일 뿐만 아니라 한국 전쟁 당시에도 이런 위기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기를 넘겼단다. 지금도 그 종에 종루에 달려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배당 내부에 있는 올갠이다.

강대상 앞 왼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 물건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견디어 온 물건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그 당시에 풍습대로 지어진 증거는 교회에 들어가는 문이 중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 왼쪽과 오른쪽 두 문이 있는데, 그때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 남자가 출입 하는 문, 여자가 출입하는 문으로 되어 있고, 오른쪽 문에 걸려 있는 교동교회 간판은 그 당시의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해내려 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단다. 지금 소망 교회의 원로 목사이신 곽선희 목사가 1.4후퇴 때 교동도로 피난을 와서 교동교회를 출석을 하였단다. 당시 교동교회는 전쟁으로 갈 곳이 없어진 피난민들이 거의 500여명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던 교회였다. 그곳에 약 8개월간 머물며 새벽기도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던 청년 곽선희를 유심히 본 사람이 송 말례 권사였다. 곽 청년이 마음에 들어서 손녀 김은자를 곽 청년과 짝 지워 준 일도 바로 이 교동 교회를 통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이 교동교회는 교파를 초월해 많은 기독인을 길러냈다. 목사만도 약 40여명이 이 교회에서 나왔고, 1926년 시각 장애인을 위하여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을 창안한 송암 박두성 목사도 이 교회 출신인데 지금까지도 맹인의 세종대왕으로 추앙되고 있다. 그리고 총신대 신학대학원제28대 총동창회장인 박 광재 목사(광명 영광교회 원로 목사)가 또 박 선생의 후손이다. 교동 박씨 문중에서 목회자가 20여 명 나왔으니 가히 교동의 신앙 명가라 할만하다. 기독교 대한 감리교회(기감) 고 정등운 감독과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87대 총회장을 지낸 고 한명수 목사 등은 교동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현 교동 교회 주보 그리고 아쉬운 점은 지금 옛 교동 교회는 유적지로 남아예배는 드리지 않고, 옛 교동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기감 소속된 교동교회가 있다.

이 교회 주보에 그 역사를 기록하고 있어서 사진으로 남긴다. 그리고 교동 교회를 방문하시거나 역사 탐방을 원하시는 분은 도착 30분 전에 연락하시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전화 032-933-4621(박창혁)그리고 함께 볼 수 있는 교회는 강화도 최초의 교회

교산 교회(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교산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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