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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탐방기] 충청도 독립운동의 메카 아우내 장터와 매봉교회
 
   · 게시일 : 2014-10-15 13:24:45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충청도 독립운동의 메카 아우내 장터와 매봉교회

유관순 열사, 조병옥 박사 등 민족의 선각자들을 배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3.1운동 당시 지역 독립운동의 한군데인 아우내 장터 그리고 그 독립운동의 중심에 섰던 교회가 매봉교회입니다. 그리고 유관순 열사의 교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국 현대 정치사의 빼놓을 수 없는 정치인 조병옥 박사와 가족 역시 이 교회 출신입니다.

수차례의 교회 화재와 핍박에도 굴하지 않은 민족교회의 아름다운 모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는 전시관이 그리고 교회 옆에는 유관순 열사의 생가가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조병옥 박사의 생가 등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함께 둘러보면 유익할 것입니다.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의 옛 이름은 '지령리'입니다. 지령리는 산이 서쪽으로 병풍같이 에워싸고 있으므로 산서입니다. 그리고 예부터 산이 에워싸고 물이 돌아 흘러서 인물이 많이 날땅이라 하여 지령리라고 불러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병천이란 말도 순우리말로 하면 '아우내','아오내','아내'입니다. 지금도 계속 이어지는 아우내 장은 병천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지령리에 복음이 처음 들어온 것은 1899년 스웨러 선교사에 의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후 1901년에는 박해숙 전도사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점점 부흥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후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도처에서 국권을 회복하자는 이름 아래 소위 을사 의병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목적아래 시작된 의병운동은 먼저 지식인들에 의해서 항일 언론운동이 일어났고, 그리고 아울러서 애국적 유생들과 종교계 또는 전직 관료들에 의해서 상소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서울에서 시작한 이러한 운동은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러한 의병들을 소탕할 목적으로 일본군이 도처에 파견되어 진정시킨다는 이름아래 갖은 횡포가 극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의병을 도왔다는 이유로 불태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907년에는 전국에서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가하여 의연금을 모아 대한매일신문사에 보내기도 하였는데 여기에 참가한 숫자는 82명에 달하였습니다. 일본인들은 교회가 그들의 침략에 방해가 되자 다시 매봉교회를 불사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꾸준히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기도하다가 드디어 191941일 병천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던 것입니다. 이 운동에는 전교인이 참여하였고, 결국 교회는 집회금지령이 내려졌고, 있던 교회마져 불살라지고 말아 해방이 될 때까지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처음엔 공주에서 선교사와 사부인이 왕래하여 복음을 전했으며 그 후 케블 감리사와 대목사, 안명도 전도사 등이 다녀가며 교회가 세워져 갔습니다. 선교사들의 교통수단은 주로 당나귀를 타고 다녔으며 이 소식을 들은 동네 어른, 아이들이 20리 까지 고개를 넘어 마중을 갔습니다. 선교사들은 반갑다고 선물을 주기도 했습니다. 새 예배를 시작하던 날은 부근 동일에서 미국사람 구경도 할 겸 수백 명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복음이 이곳에 들어오자 복음이 불길이 번지듯 급속도로 전도가 되어 그 일대를 복음화 시켰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도 있으려니와 교회를 의지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대대로 유교를 숭상할 뿐 아니라 토질적으로 고집이 세고 강직한 곳이지만 그러한 아성이 무너지기 시작하니 쉽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유씨 집안은 물론 그 이웃인 조씨 집안까지 복음이 전파 되었습니다. 매봉교회가 독립운동을 주도하게 된 것은 1908년 이래 지령리에 기독교가 들어오고 이 기독교를 통해서 얻어진 기독교의 정신이 민족독립운동에 열렬하게 참가하도록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병천 3.1운동은 물론 이 지역 6군에서 참가한 민족적인 운동이었지만 매봉교회의 운동이요 기독교 운동이었습니다. 유관순은 철저한 기독교인이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믿음의 사람이요, 유중무씨도 또한 그러하고, 조인원씨는 당시에 속회장을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 분의 아들은 조병옥 박사입니다. 서울에 유학을 가서는 정동교회의 교회학교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모두 매봉교회가 길러낸 훌륭한 애국지사들입니다. 매봉교회는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는 민족교회의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3.1운동후 모든 교인들이 투옥되거나 순교하게 되었고, 교회마저 일본인의 손에 불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교회는 계속적인 박해로 인하여 차츰 교인이 줄어 마침내 자연적으로 없어지게 되었으니 그때가 1923년경입니다. 해방 후 이화학교는 지령리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고 여러모로 원조를 하여 또 다시 복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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