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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탐방기] 국내유적지 탐방-애양원과 손양원목사
 
   · 게시일 : 2014-08-15 16:38:10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애양원과 손양원목사

애양원의 시작은 선한 사마리아인 포사이트 선교사에서 시작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의 사랑과 헌신의 흔적

 

사랑의 원자탄으로 불리는 손양원 목사와 떼 놓을 수 없는 곳이 애양원입니다.

그리고 애양원의 시작은 성경에 기록된 선한 사마리아인 그대로의 모습니다.

처음이 아름다운 그곳은 손양원 목사라는 훌륭한 분을 모시게 되고 손양원 목사는 애양원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애양원 병원은 지방으로서는 드물게 국내의 손꼽히는 관절 전문 종합병원으로 발전하게 되고 애양원과 손양원 목사의 묘지 그리고 순교기념관은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을 배우러 오는 발길로 끓이지 않는 곳이 되어있습니다.

 

애양원의 시작은 미 남장로교 선교 활동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이 때 활약하던 선교사가 호남 선교의 큰 줄기라고 할 수 있는 유진 벨 선교사와 오웬 선교사입니다. 오웬 선교사는 1904년 이후 능주, 남평, 화순, 장흥등지를 맡아 선교하게 됩니다. 열심히 하던 그가 폐렴에 걸리게 되고 이때 목포에서 활동하던 포아시트 선교사를 오웬의 치료를 위해 급히 광주로 부르게 됩니다. 급하게 광주로 오던 포사이트는 길가에 버려진 죽어가는 한센병 여자를 발견하고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심정으로 말에 태우고 자신은 걸어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여인을 위해 윌슨 선교사는 자신들의 사택 건축을 위해 준비하던 벽돌 가마터를 단장하여 치료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이 최초의 한센병 치료소가 됩니다. 후에 봉선리에 병원을 짓고 20여명의 치료를 시작하게 되며 후에 지금의 여수로 옮기고 1936년에 이르러 여수 애양원으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손양원 목사는 이곳 애양원교회 제 4대 목회자로 부임하게 됩니다.

그의 항일 정신과 신사참배 반대는 신학교 시절부터 남달랐다고 합니다. 그런 그를 일본과 총회는 그냥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노회에서는 순회 강도사역을 못하도록 하였으며 일본은 감옥에 넣어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해방을 감옥에서 맞게 되고 나오자마자 애양원 교회를 찾게 됩니다. 해방 이 후부터 한국 전쟁 전까지의 손목사와 애양원 교회의 신앙은 더욱 뜨거웠습니다. 그 사이 1948년 10월 26일 여순 반란 사건으로 좌익 청년 안재선에 의해 반공 학생 활동을 하던 두 아들을 잃게 됩니다. 반란 사건이 쉽게 진압되어 안재선이 잡히고 총살에 처해질 위기에 몰리자 손 목사는 그를 죽이는 것은 아들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는 것이라며 학생의 석방을 간청하게 되고 양아들로 맞이하게 됩니다.

 

한국전쟁의 발발의 여파는 이곳 여수에 까지 몰아치게 됩니다. 교인들은 목사님을 먼저 피난 시키려하지만 허락되지 않자 그럼 교인들과 교역자 모두 함께 떠나자고 간청을 하게 됩니다. 손양원 목사는 더 이상 거절 할 수 없어 교인들과 함께 송별 예배를 드리고 출발 하려는 순간 갑자기 손양원 목사 혼자 작은 가방을 들고 뛰어 내립니다. 교회를 두고 떠날 수 없다는 목사의 의지 였습니다. 결국 1950년 9월 13일에 체포되어 1950년 9월 28일에 총살당하였습니다.

그는 총검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마지막 자리에서 주를 향하여 기도하며 총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는 살아있는 사랑의 사도요, 성자였습니다.

그가 아들들의 장례식에서 나눈 감사의 내용입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을 나오게 하였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 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로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 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합니다.

 

끝으로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그는 당시 사례비가 50월 정도였는데 감사헌금으로 일만원을 했다는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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