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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탐방기] 국내유적지 탐방-수천교회
 
   · 게시일 : 2014-06-30 16:25:41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일제 강점기의 만행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있고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 수많은 상처의 중심에는 교회가 있습니다.

경기도 화성의 수촌리는 마을 전체가 일제에 의해 불타 버린 곳입니다.

그 마을의 중심에 있던 교회 역시 큰 아픔과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화성의 수촌리에서 마을과 함께 아픈 역사의 흔적을 남긴 수촌교회입니다.

경기도 안산의 샘골교회, 화성의 제암리 교회, 남양교회 등과 함께 꼭 가봐야 할 기독교 유적지입니다.

 

장안면 수촌리는 예로부터 질 좋은 쌀로 유면한 곳입니다. 그리고 바다가 가가이에 있어 소금 생산량도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인들이 욕심을 부린 곳입니다.

일본인들은 당시 교통의 중심지 발안에 상점과 정미소를 열고 주민들을 착취하기 시작합니다. 토지 수탈과 소금에 대한 염세를 부과하게 됩니다. 이런 저런 피해와 핍박 속에서 주민들과의 갈등은 고조 되고 반일 감정은 타오르게 됩니다.

이 무렵 서울에서 배재 학당을 다니던 김교철이 내려와 학교를 세우며 계몽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김교철은 배재학당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이곳에서 본처전도사의 사명도 감당하면서 주민들에게 세상에 대한 안목과 항일의식을 심어 주게 됩니다.

이런 지역적 배경과 함께 마을에는 수촌교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1905년 김응태목사(당시성도)를 중심으로 정창하의 집에서 모여서 예배를 시작한 것이 수촌교회의 출발입니다.

수촌교회의 비극은 삼일운동이 시작된 한 달 뒤 4월부터 시작됩니다.

이는 제암리의 비극보다 먼저 시작된 수촌리 전체의 방화와 학살 사건이었습니다.

3,1에 시작된 만세 운동은 이곳 화성에도 커다란 파도처럼 밀려들었습니다.

수촌리 주민들과 인근 주민들은 만세를 부르며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향하게 됩니다. 당황한 일본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포를 합니다. 이를 피해 주민들은 도망하게 됩니다. 이때 그들이 가지고 있던 총알이 다하자 주민들은 다시 몰려들게 되고 일본 순사부장 가와바다와 실랑이가 벌어지고 그를 쓰러뜨리고 기절시킨 후 도망을 갑니다.

 

상황이 정리된 후 일본인들이 돌아와서 보니 이곳에서 ‘수촌주민일동’이라는 현수막이 발견되므로 경찰들은 분노하게 되고 보복을 계획, 시작합니다. 이들은 총 네 차례에 걸쳐 잔인한 보복을 벌입니다.

첫 번째 보복에서는 가옥 24채를 불태웠으며 5명의 부상자가 발생합니다.

2차에서도 8채의 가옥 방화와 남은 가옥을 수색하던 중 피 묻은 가와바다 순사의 옷을 발견하고는 무차별적인 폭행이 이루어집니다.

3차 보복에서는 집집마다 수색과 협박으로 130여명을 체포하여 밧줄에 묶어 몽둥이질을 해버립니다.

4차 보복에서는 만세 운동의 주동자로 알려진 백낙렬을 찾는데 혈안이 되었으나 주민들의 반응이 없자 더욱 약이 올라 주택 네 채를 불태워 버립니다.

 

네 차례의 걸친 방화로 인해 마을의 40여 가구 중 36채가 불타 버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촌교회 역시 4차 보복에서 불타버리고 맙니다.

이 때 교회 성도였던 김의태라는 분은 자신의 집이 불타고 있는데도 교회가 불타는 것을 보고 교회로 향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서운 화마속에서 교회의 중요한 문서가 있는 궤짝을 혼자 들고 나오게 됩니다. 그 안에는 교적부와 당회록등이 있었으며 한국기독교사에도 중요한 유물로 보관되고 있습니다.

이 만행적인 사건과 마을의 비극을 싸매준 이가 바로 스코필드 선교사였습니다.

 

마을의 이 븍에 대한 소식을 들은 선교사는 바로 이곳으로 내려와 시신 수습과 부상자를 돌보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의 조작에 의해 사라질 뻔한 일본의 잔인성에 대해 제암리 사건과 더불어 세상에 알리게 됩니다.

후에 스코필드의 공적을 남기기 위해 마을에는 3.1운동 기념비와 함께 선교사의 공적비도 함게하고 있습니다.

수촌교회는 향토유적 9호입니다. 이는 원래 8칸짜리 초가집 형태였습니다. 이 불타버린 교회를 1987년에 복원하였고 그 옆에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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