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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석교회문화] 국내유적지 탐방-철원제일 감리교회
 
   · 게시일 : 2014-05-30 16:17:05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철원 지역은 38선 북쪽 지역입니다. 그래서 그곳을 방문 할 때면 왠지 모를 긴장감에 사로 잡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는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배어있습니다. 특별히 철원 지역은 전쟁의 치열함 속에서 더 많은 상처들을 지니고 있는 곳입니다. 북한 노동 당사 옆에 자리하고 있는 철원제일감리교회는 미선교사들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이지만 미군에 의한 폭격으로 이젠 터만 남아있는 교회입니다. 철원제일 감리교회를 소개합니다.

 

철원제일 감리교회는 미 장로교 소속의 웰번 선교사에 의해 1905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하지만 초기 장로교와 감리교가 효율적 선교를 위해 선교 구역을 분할하게 되고 1907년에 감리교로 편입하게 됩니다. 초기에는 육영사업에 힘쓰던 교회는 1920년 7월에 의료선교사인 앤더슨 부부와 여선교사 어윈이 상주하면서 더욱 선교에 힘쓰게 됩니다. 그리고 1936년에 오랜 숙원이었던 성전 기공식을 하고 이듬해 1937년에 봉헌식을 거행합니다.

 

당시 건축비는 27,200원이었는데 반이 넘는 15,850원을 미 선교부에서 지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설계는 당시의 교회 건축물로 유명한 보리스가 합니다. 보리스의 설계는 이화여대 캠퍼스, 서울에 건립된 협성여자신학교와 피어슨 기념성경학원의 기숙사, 그리고 공주영명학교, 태화사회 복지관등이 있습니다. 당시의 철원감리교회는 아름다웠고 철원지역의 랜드마크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건축된 교회는 역사의 아픔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앙상한 흔적과 순교자들의 피만 그날의 비극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제강점기 때와 한국전쟁이었습니다.

 

철원지역은 강원도 지역에서 만세 운동이 가장 먼저 일어난 지역입니다. 그 중심에는 당시 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박연서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청년들이 함께하며 항일단체인 ‘철원애국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1920년에 23명의 체로로 해산되었습니다. 그리고 1939년에 강종근목사가 부임하게 됩니다. 강종근 목사는 부임 후 헌신적인 노력으로 교회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크게 부흥하였고 교인들 뿐 아니라 지역의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일제의 감시와 방해는 점점 노골화 되고 맙니다. 그는 1940년 신사참배를 거부하자 조선총독부의 ‘사상범 예비검속령’에 의해 구속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게 됩니다. 결국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1942년 6월 3일 사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주를 따라간다. 마음이 기쁘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순교하게 됩니다.

또다시 한국전쟁으로 인해 교회는 피로 물들게 됩니다. 철원지역의 기독청년들은 반공투쟁을 하였지만 총과 탱크로 무장한 인민군에게 교회를 내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공산군을 피해 한탄강 인근에서 굴을 파고 신앙을 유지했던 이들도 있었으며 발각된 경우 강물에 투신을 하며 “예수천당, 불신지옥” 외쳤습니다.

 

 물살이 강한 한탄강에서 시신조차도 수습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붙잡혀 교회 지하실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빼앗은 교회를 인민군들은 병원처럼 사용하기도 하였고 그들의 병영으로 사용하며 교회 지하에서는 무고한 양민들의 고문과 학살의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은 인민군 소탕을 목적으로 폭격을 가하게 됩니다. 그로 인하여 이제는 전쟁의 상처를 안은 잔해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보존하며 바로 옆에 자리한 노동당사와 함께 근대문화 유산 23호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상처로 아픔이 서려있는 이곳 역시 우리가 지켜야할 신앙의 요람이요 3.1운동의 역사와 한국전쟁의 역사적 교훈의 장소입니다.

 

다행히 서기훈 목사가 순교한 철원장흥교회의 이금성 장로가 오사카 예술대학 박물관에서 당시 설계했던 보리스의 설계도면을 찾게 되었고 당시 실물 그대로 복원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북일리아노 이주연회의 자매결연위원회 대표로 복원을 위해 내한한 로버트 목사는 “파괴된 이곳의 회복은 부활의 상징과 같다.” 고 하였습니다.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가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닌 복음의 통일로 치유되며 역사의 흔적인 교회도 아름답게 복원되길 기도합니다.   호국 보훈의 달 6월에 가봐야 할 선교 유적지로 추천합니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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