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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탐방기] 국내유적지 탐방-승동교회
 
   · 게시일 : 2014-06-15 16:10:00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승동교회와 박성춘 장로

 

“승동교회는 민족의 영욕과 함께 한 민족 신앙의 산실입니다.”

승동교회의 홈페이지에 가장 눈에 뜨이는 문구입니다. 그리고 승동교회의 역사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국 선교 초기에는 개화의 바람과 함께 받아들이기 힘든 많은 일들이 생겼습니다.

양반과 천민이라는 계급의 갈등이었습니다.

이 때 새로운 개화의 바람을 은혜롭게 지난 인물들이 금산교회의 조덕삼 장로와 이자익목사 그리고 승동교회와 사무엘무어 선교사와 박성춘 장로입니다.

 

당시 박성춘은 천민 중에서도 가장 하급계층으로 여겨졌던 백정이었습니다. 당시 백정들은 인구조사에서도 제외가 되고 거주지의 제한은 물론 상투나 망건, 갓등을 쓸 수도 없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승동교회는 미국인 선교사 사무엘 무어에 의해 1893년에 곤당골 교회라는 이름으로 처음 예배가 시작되어 집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학당을 세우고 무료로 교육을 시작합니다.

 

그 배움에 터전에서 자식을 가르쳐 백정의 신분에서 벗어나고자했던 이가 바로 박성춘이란 인물입니다. 그의 아들 봉출이와 누이(앨리스 선교사의 여학교)들도 함께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전염병인 콜레라의 발생으로 박성춘은 죽게 되었습니다. 이 때 곤당골 교회의 사무엘 무어 목사와 당시 제중원(후에 광혜원) 담당 의사 였던 에비슨 선교사가 박성춘을 정성껏 진료하게 됩니다. 사람 취급도 못 받던 이가 임금의 주치의에게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당시 분위기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죽음의 위기를 사랑으로 경험한 박성춘은 가족과 함께 곤당골 교회로 출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때부터 갈등이 시작되는데 기존에 교인들이 양반위주였습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백정과 함께 한다는 것은 용납 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선교사에게 압력도 넣어보고 교회 출석을 거부하는 등 문제가 심각하였습니다. 사무엘 무어 선교사 역시 대안도 제시해 보기도하고 하나님 안에서의 평등을 강조하였으나 결국 그들은 교회를 떠나 새롭게 홍문사골교회(후에 안동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이 일로 박성춘은 전도에 더욱 힘쓰게 되며 분리 된지 3년 만에 1898년에 다시 합쳐지게 됩니다. 하지만 다시 분열과 결합을 반복하면서 승동교회에는 양반과 천민을 인정하는 사람들만 남게 됩니다.

 

분열 속에서 힘있는 자들이 아닌 천민들을 선택한 선교사의 용기도 대단합니다.

또한 박성춘은 이 교회의 장로가 되며 당시 내각 총서인 유길준에게 ‘백정차별금지법’을 탄원하게 되고 결국 수 백 년 간 백정들에게 허락되지 않던 망건과 갓을 쓰는 최초의 인물이 됩니다. 그는 처음으로 갓을 쓰던 날 너무 좋아서 잠자리에서도 벗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봉출은 세브란스를 졸업하고 조선 최초의 서양의사 박서양이 됩니다. 그는 후에 간도로 이주하여 병원을 세워 활동하며 민족 교육 기관인 숭신학교를 세우게 됩니다. 또한 만주의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국민회에 참여하여 산하 군 사령부의 군의로 활동하게 됩니다.

지난 반만년 동안의 악습을 끓게 하신 하나님은 가장 낮은 자를 통하여 사회 개혁은 물론 사랑의 실천자로 만드셨습니다.

또한 승동교회는 3.1운동의 중요한 거점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연희전문 학생이며 교회의 청년 회장이었던 김원벽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모인 학생대표들이 모여 조국과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기도로만 그친 것이 아니요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제작, 나누어 주며 실천하였습니다.

 

또한 여운형 선생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스쳐간 곳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조국을 이끄는 등대요, 인물을 키워내는 모판임을 보여주는 귀중한 한국 교회의 유산입니다.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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