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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석교회문화] 국내유적지 탐방-부여 규암교회
 
   · 게시일 : 2014-04-15 16:06:40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교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 반드시 행해져야 하는 세가지는 말씀선포와 성례식 그리고 바른 권징의 실시입니다. 요즘 은혜라는 이름 아래 권징의 실시가 유명무실화 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한국교회 초기에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지 위하여 세례와 권징실시에 좋은 모범을 보인 교회가 한강 이남의 최초의 성결교회인 규암교회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터전 위에서 세워져야 한다고 믿었던 동양선교회는 이를 실천하려 노력하였습니다. 구한말 찬정 벼슬을 지낸 김성기란 인물이 규암교회를 시작한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첩이 있었는데 그녀가 교회를 다니고 그녀의 전도로 예수를 믿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본 부인에게도 권유하지만 첩이 다니는 교회는 싫다고 거절당하게 됩니다.(후에 그 여인도 신앙생활을 했다는군요) 서울에 거주하던 그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1912년에 그의 가정에서 교회를 시작하니 규암교회의 첫 시작입니다. 후에 선교사가 방문하게 되고 신학생박제원을 파송하면서 1915년 동양선교회 규암 전도관을 설립하고 후에 규암교회로 발전하게 됩니다. 김성기는 시간이 지나 세례를 요청하게 됩니다.

 

하지만 동양선교부에서는 첩을 데리고 사는 그에게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며 세례를 거부하고 그를 중심으로 한 교회도 거부하게 됩니다. 첩을 데리고 있는 한 세례를 줄 수 없다고...

동양선교부에서는 1013년에 서울 신학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성서학교의 학생인 박제원을 파송하게 됩니다. 박제원은 열심히 전도하고 교회는 부흥하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 김성기도 마음을 바꾸어 첩을 돌려보내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또한 교회 건축을 위해 쌀 20섬을 내놓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첩은 경성성서학원으로 보내 전도부인 훈련을 받게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심은 오래가지 못하고 첩은 다시 김성기에게 돌아오게 되고 둘 사이의 아이도 생기게 됩니다. 그는 열심도 있는 사람이었고, 재력도 있었으며 그 지역의 영향력도 있는 사람이었으나 동양선교회는 진리의 수호를 위해 그를 출교하게 됩니다. 출교 후 김성기는 교회를 원망하며 자신의 토지를 소작하고 있던 이들과 함께 교적을 옮기고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교회로서는 큰 아픔이요 타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진리를 지키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이전까지의 교회가 김성기를 중심으로 진행했다면 이제부터는 모두가 나서게 되면서 남은 성도들은 이를 통해, 말씀과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며 더욱 신앙에 매진하게 됩니다. 그들의 형편으로는 상상 할 수도 없는 돈을 건축을 위해 헌금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수입의 70%를 헌신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원칙만 고수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규암교회의 제1 성전은 ‘ㄱ’자 예배당이었습니다. 유교 사상에 익숙하여 남녀가 유별하다는 시대를 고려한 배려였습니다. 교회가 지역의 정서나 교인들에게 군림하려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또한 일제의 신사참배 반대로 조선총독부에 의해 교역자들과 신도들이 연행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교회를 빼앗기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뿔뿔이 흩어져 내리 감리교회(규암중앙감리교회)에서 예배하다가 대전성결교회의 유일선집사가 인도하는 지하교회에서 신앙을 지키게 됩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의 상처로 예배당이 없이 가정에서 몇 년간 교회명맥을 유지하게 됩니다. 모두가 못살고 못 먹던 그 시절에 하나님의 성전만큼은 건축해야한다는 마음으로 1958년 1월에 두 번째 성전을 완공 헌당하게 됩니다. 그해의 겨울은 규암교회의 성도들의 열정으로 따뜻했을 것 같습니다.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요 진리의 터입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하는 일은 당장은 쉬울 수 있지만 영원 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은 것입니다.

규암교회의 100여년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를 그리고 한국 전쟁을 지나면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이는 처음부터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노력의 결과입니다. 이 땅의 교회들이 말씀선포, 성례, 그리고 권징의 실시가 바로 서길 기도합니다.

 

충남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90번지 예수교 대한 성결교회 규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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