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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구목사] 주추를 반석위에 놓는 것이 사명이다.
 
   · 게시일 : 2020-12-01 08:03:41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현대 사회에서의 돈과 학벌은 경중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상호 관계적이다. 좋은 학벌은 수입을 보장해주고 신분 상승과 권력도 얻게 해준다. 이런 사실을 잘 알기에 명문 대학을 향한 경쟁은 어려서부터 치열하다. 자식을 명문 대학에 보내려면 엄마의 정보력과 아빠의 무관심과 할아버지의 재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돈이 있어야 학원에도 보내고 양질의 사교육을 시킬 수 있으므가난한 사람에 비해 명문 대학에 들여보내기가 훨씬 쉬워 진다. 돈과 학벌은 그만큼 관계적이며 부의 대물림은 학벌의 대물림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부자는 좋은 학벌을 얻기가 쉽고 좋은 학벌을 가지면 부자 되고 반대로 가난하면 좋은 학벌 갖추기가 어려울 수 있다. 옛말에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은 이제는 정말로 옛 말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리가 남은 삶의 주추를 어디에 두면 든든한 반석이 될까? 지금도 팬데믹 상태지만 포스트 코로나19의 시대를 염려하고 걱정하는 소리들이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7: 24~25)라고 주추를 반석위에 놓으라고 말씀 하신다.

 

주추를 반석위에 놓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일까? 세상에는 보이는 차원이 있고 보이지 않는 차원이 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사실 보이지 않는 차원만큼 든든한 삶의 주추도 없으며 그것만큼 풍요한 자산도 없다. 보이지 않는 차원 이라면 속사람과 하나님의 형상이며 내안의 참자아이. 이러한 보이지 않는 심층 차원과 본질 차원이야말로 삶을 가장 든든하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근본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이런 근본적 삶의 주추에 대해서는 많이 무지하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사정은 다르지 않고 이런 단어는 추상적인 관념일 뿐이며 자신의 삶에서 실제로 심층 차원과 본질 차원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아서 그것을 삶의 주추로 삼고 삶의 자산으로 여기는 기독교인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말이 나왔으니 인간이라는 존재의 진실을 분명히 밝히자면 나라는 존재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나는 혈연을 통해 형성되는 관계 이상의 존재이며 나는 누군가의 아들이며 딸이지만 그 이상의 존재이고 나는 누군가와 형제자매지만 그 이상의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줄곧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크다고 말할 수 있으며 무엇 이상의 존재를 일컫는 말이 바로 육체에 대비해서 영이고 겉 사람에 대비해서 속사람이며 외모에 대비해서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의 존재 너머의 존재 심층의 존재 본질적 존재를 사람들은 입으로만 말할 뿐이고 그것의 리얼리티와 시너지는 잘 모르기에 보이지 않는 심층 차원과 본질 차원을 주추로 삶을 리 만무한 것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존재의 심층 차원과 본질 차원은 보이지 않기에 오감(五感)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 구체적으로 다가오질 않는다. 속사람이라는 말은 알아도 그것의 실체는 느끼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이니 하나님 형상이니 속사람이니 참자아니 아무리 말을 해도 그것에 삶의 뿌리를 내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반석 위에 삶의 주추를 세우는 사람은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의 결정적인 이유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의 덩어리들에 얽히고 석여서 각양각색의 생각과 감정들이 겹겹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참모습과 진실한 모습과 참 자아는 우리와 한없이 동떨어져 있고 생각과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관념적인 것처럼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한 가지 이유는 자기의 생각이나 또는 감정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고정관념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불안이나 우울 두려움이나 공포 분노나 미움 같은 악성 감정과 자신을 동일시하므로 하나님의 형상이나 속사람이나 참자아가 드러낼 수 없고 심층의 본질적 존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우조차 거의 없다.

그렇기에 고착화된 생각을 비우는 기도훈련이 필요하다. 깊은 기도의 훈련을 꾸준히 하면 생각의 층도 엷어질 뿐 아니라, 생각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고질적인 패턴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점차 존재의 본질 차원과 심층 차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것이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되고 자신의 참된 정체성을 찾으면서 반석위에 세워지는 삶의 주추가 구축되기 시작되는 것이다.

 

끝으로 골로새 교회에 보낸 바울 서신의 한 대목을 인용하고자 한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행하되 여러분은 그분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2:6-7) 예수님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과 교훈과 감사함은 어떤 것일까? 사실 한국교회는 신앙을 이기적 욕망 충족의 도구와 세속적 성공의 도구로 여긴지 오래됐기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하는 그리스도인조차도 흔치 않을 것 같다. 신앙의 동기란? 세속의 성공이나 축복 교회의 성장이나 부흥이 되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목회도 마찬가지로 목회의 주추는 몇 가지 성장프로그램이나 문화사역도 아니며 복지사역도 아니고 카페교회나 학원선교도 아닐 것이다. 이런 각종 프로그램과 사역이 필요 한 것은 분명하지만 존재의 심층적 본질 차원이 결여될 때 목회를 사업과 경영으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 결론적으로 반석위에 주추를 세우고 예수 안에 뿌리를 박은 삶이란? 대상으로써 존재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존재의 심층에서 예수다움과 그리스도성을 알아차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다움과 그리스도성이라고 표현한 영적 실체를 일컫는 말이 바로 속사람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의미하며 참자아임을 자각하여 예수 그리스도이신 반석위에 신앙생활과 목회의 주추를 놓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이선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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