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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구목사]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의 회복이 사명이다
 
   · 게시일 : 2020-11-01 12:47:52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요즘 코로나19의 확산과 깜깜이 감염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기에 방역당국은 이미 방역등급을 2.5단계로 3단계에 준하는 상태로 상향하였다. 방역당국은 대한민국이 코로나 2차 대유행의 기로에 서있기 때문에 최소한 10일 정도는 출퇴근 및 필수적인 외출을 제외하곤 모임여행 등 사람 간의 접촉을 줄여 달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이런 장기적인 코로나19 상황에 기독교인의 삶과 예배의 형태에도 예외 없이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사실 예배란 인간의 시간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이며 하나님이 주어(主語)인 시간이다. 솔직히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예배는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며 온라인으로 아무리 정성껏 예배를 드린다 한들 현장예배에 견줄 수는 없을 것이다.

 

예배자는 예배를 통하여 의식이 상승하고 마음의 결은 바뀌며 남을 대하는 태도와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변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예배자를 통해서 탄식하는 피조 세계에 전달이 된다. 나아가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예배적 요소에서 성삼위일체 하나님은 다양한 감정과 열망을 갖고 참여한 예배자 들에게 때로는 이슬비처럼 때로는 폭풍우처럼 때로는 천둥과 번개처럼 때로는 햇살과 미풍처럼 임하심의 은혜를 내리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몸으로 세상에 오셨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몸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몸으로 오신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몸으로 참여하는 특정 시공(時空)이 예배이며 예배 후에 이루어지는 성도의 교제 또한 관념 속에서 추상적이지 않고 기독교 성도의 교제는 신체적 현존을 매개로 이뤄지기에 본회퍼는 성도의 신체적 교제의 기쁨을 이렇게 묘사했다. “다른 그리스도인이 신체적으로 함께 있다는 것은 신자들에게 비할 수 없는 기쁨과 힘의 원천이 된다.”

온라인 비대면 예배의 아쉬운 점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성만찬의 부재일 것이다. 세례식과 함께 성만찬은 기독교 의례의 절정으로서 예배의 꽃이다. 성만찬에 참여한 사람들은 빵과 포도주를 믿음으로 받으면서 빵과 포도주에 함축된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면서 삼위일체의 깊은 곳 사랑의 일치에 참여하고 믿음을 갖고 정성껏 성만찬에 참여할 때 예배자는 하나님과의 일치감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기에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 은혜 체험의 절정이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현장예배의 환희와 교제의 기쁨과 성만찬의 은혜를 누릴 수 없게 됐다. 우리의 불신앙 때문만이 아니며 고문과 박해 때문도 아니다. 지금은 시대의 치유를 위해 현장예배와 교제의 기쁨과 성만찬의 은혜를 잠시 유예해야 하는 때이다. 그러므로 온라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다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길을 다 같이 고민해야 하는 때이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교회는 현장예배가 어려워진 지금의 상황을 방역당국과 각을 세우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가 어떤 예배인지 성찰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한국교회 예배는 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일까? 예배가 하나님이 주어인 시간이라면 혹시 한국교회의 예배에는 간이 주어인 순서는 없었을까? 예를 들어 찬양과 연주는? 기도와 설교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다운 예배는 어떤 예배일까? 교단이나 교리로 왈가왈부 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확실하게 모르기에 성경을 통해서 알아보아야 정확도에 가까울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4:24) 우리는 이 말씀에 대하여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참 자아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참 자아는 영을 지향하며 진리를 갈망하고 거짓 자아는 육을 지향하며 세상을 갈망한다. 따라서 영과 진리는 참 자아와 동의어로 볼 수 있기에 영과 진리는 참 자아의 본질 속성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12:1)

하나님께 드릴 합당한 예배는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산 제물이 되어야 한다. 산 제물이란 무엇일까? 그게 바로 참 자아일 것이다. 하지만 거짓자아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고 허상이며 세상 적이며 죽은 상태이기에 거짓자아는 하나님께 드릴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참 자아의 상태에 있을 때만 우리는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참 자아의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거룩한 산 제물이 될 수 있다. 결국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참 자아의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를 말하는 것이다. 나아가 참 자아는 예배다운 예배와 예배답지 못한 예배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참 자아의 상태에서 예배를 드릴 때 그 예배는 하나님께서 주어인 시간으로 변형 될 것이다. 하지만 참 자아가 소멸 할 때 즉 예배자의 세상적인 욕심과 개인의 욕망과 성공과 출세의 성취를 위한 예배는 거짓자아의 예배로써 불필요한 요소들이 끼어들고 지나친 장식과 과시적인 찬양과 공격적인 설교가 되는 것이다.

 

론적으로 우리가 온라인 예배를 드리던지 오프라인 예배를 드리던지 참 자아의 상태에서 성령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며 참 자아의 상태가 예배자의 지향과 소원 갈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삽화의 발전에 기여한 18~19세기 영국의 시인이며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우리를 빚는다.”(We become what we behold.) 참 자아를 바라보고 참 자아를 갈망할 때 우리는 참 자아로 빚어지며 영과 진리로써 산 제물이 되기에 하나님께서 즐거이 받으실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의 시인은 언제나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 예배하여라.”(105:4)라고 권면한다.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참 자아로써 산 제물이 되어서 온전한 예배자의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예배의 회복이 성도들의 사명이다.

 

이선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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