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노년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과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자신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드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윗의 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너 대신 네 아들 솔로몬이 건축할 것이라’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는 대신 성전건축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평생에 걸쳐했고(22장) 장차 성전에서 드려질 예배를 생각하며 예배의 틀을 단단히 구축해놓았습니다.(23장) 이러한 내용이 역대기상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10-29장) 이를 보면서 다윗이 하나님의 큰 은총을 입게 된 것이 이런 소원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는 역대기서를 기록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역대기서는 이때로부터 150여 년 전 신앙에서 탈선함으로 인해 삶이 무너졌던 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삶의 회복을 위해 주신 말씀입니다. 이제라도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복된 삶을 살려면 다윗을 본보기로 하여 새롭게 시작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다윗과 솔로몬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은 거의 기록하지 않고 좋은 모습, 성공적인 내용만 기록하여 부각시켰습니다. 그만큼 잘 되길 바라셨고 이쁘게 살아가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난 날 그들의 실패원인이 바로 이 때문이었거든요. 망하기 전 그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성전은, 건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고 예배에는 하나님에 대한 존중함이 없었습니다. 자기 편의를 위한 것이었고 형식에 불과했습니다.
이 아침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다윗처럼 노년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전을 사모하며 예배를 갈망하는 인생이 되라. 이를 영적 유산으로 남겨라”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봅시다. 첫째 ‘내겐 이곳이 건물인가, 성전인가? 구별된 마음과 함께 사모함이 있는가?’ 물론 이곳이 출애굽 때의 성막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곳이 주님의 집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내 안에 예배에 대한 갈망이 있는가, 나는 성실한 예배자인가?’ 셋째 ‘예배를 위한 자기 역할에 성실한가?’(23장) 넷째 ‘새 언약의 통로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예수님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시며 성전보다 더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있는가?’ 왜냐면 이런 마음이 갈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모하비전하우스에서 숨죽이며 예배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 안에 이런 갈망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주변에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찬송도 기도도 성경공부도 심지어 아멘 소리도 마음 놓고 못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 옛날 성도들이 카타콤으로 숨어들어가서 숨죽여 예배했듯이 말입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이제 기독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더욱 커졌고 이후 기독교 부흥의 다이너마이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큰소리를 내며 드리는 예배만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아니다. 숨죽여 드리는 이 예배 속에 하나님을 향한 더 큰 갈망이 있는 거다. 이를 아이들에게 얘기해 달라’ 여러분, 예배의 생명은 갈망입니다. 갈망 없이는 천 번의 예배를 드린들 소용이 없습니다. 예배의 갈망, 이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예배에 갈망이 있습니까?
배성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