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선교에 대하여 두번째 기고문을 쓰게 되었다. 되도록이면 한두달에 한번정도는 지속적으로 기고를 해서 독자들이 일본문화와 일본선교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선교에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문화의 차이라는 말이 있다. 이와같은 말이 가장 잘 적용되는 나라 중에 하나가 일본일 것이다. 또한,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도 자주 사용되고 있고, 일본은 선교사들의 무덤이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일본에서 40년정도 선교를 해온 필자는 일본선교의 성공사례도 꽤 듣고 보아서 알고 있지만 일본선교가 장애에 부딪혀서 심한 어려움에 봉착되어버린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면 선교가 잘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현실이다. 외국에서 일본에 온 선교사들 뿐만 아니라 일본의 문화를 잘 알고 있는 일본인들도 일본선교가 너무나도 어려워서 허덕허덕 힘겨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왜 선교가 어려운가?”하는 질문에 대답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난제가 되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서의 선교의 성공사례를 잘 살펴보면 일본 선교의 길이 보인다. 따라서, 일본선교의 성공사례와 선교에 유용한 일본인의 문화를 이 기고문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의 수많은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일본선교를 실천해 왔고 기도해 왔다. 하지만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일본선교를 위한 준비교육을 받을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의문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한국의 대형교회, 중형교회, 소형교회 할 것 없이 개인적으로 또는 몇 명이 함께 수없이 많은 분들이 일본에 와서 선교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리고 일본선교는 참 어렵구나 하고 많이도 느껴왔다. 순복음교회, 온누리교회는 일본을 위하여 엄청난 금액과 인적자원과 시간을 드려 선교해왔다.
그렇지만 오랜 기간 동안의 수많은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느껴온 것도 사실이다. 물론 필자 자신도 일본선교를 위하여 나의 모든 것을 바쳐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해왔던 한국 크리스천들의 노력의 작은 결실들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 작은 기쁨을 느끼고 있다. 한국의 경우와는 달리 역시 시간이 걸리는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다.
일본 번화가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복음을 외쳐대던 지금은 고인이 된 김 에스겔 목사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음), 멋지게 플랑카드와 단체복을 준비하고 와서 일본 곳곳에서 율동과 찬양으로 복음을 외치던 복음전파자들의 노력이 작은 결실을 맺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선교는 모든 크리스천들의 공동 작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는 초대교회시대에 마치 바울이 혼자서 종횡무진로 활약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바울시대로부터 250년이 지나서 서기 313년에 코스탄틴 로마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공인될 때에 기독교는 로마제국 구석구석까지 다 퍼져 있었고, 로마제국 전체인구의 약10%가 기독교인이 되어 있었다.세대를 넘어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선교(전도)를 한 결과이었다. 일본의 선교도 이과 같은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
지면의 여유상 여기에서 줄일 수 밖에 없게 되었지만, 다음 기회가 보다 구체적으로 일본선교의 모습과 공과를 정리해 보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제는 한국에서 33년간 선교하시면서 한국 온누리교회 일본어 예배를 만드시고, 할렐루야교회 일본어예배 담임목사도 오랫동안 시무하시다가 최근에 일본에 귀국하신 미와 목사님과 점심식사를 나누면서 긴 시간 환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와 같은 한국교회를 위하여 노력해주신 일본인들도 기억하는 것이 균형 있게 일본선교를 보는 것이 될 것이다.
일본인을 사랑하지 않으면 일본선교는 어려울 것이다. 하나님의 눈물어린 사랑의 눈으로 일본을 바라보는 것이 일본선교에 임하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된다.
김정모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