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 선교행진
몇 마디 외운 단어로 길거리 전도 시작
파라과이에 도착하여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를 구입하고 한서 사전을 옆에 두고 현지인 영어교사 한 명을 개 인 선생님으로 모셔 언어공부를 하던 일이 엊그제 같다. 단어를 외울 겸 또 공부한 것을 복습하기 위해 잘하지 못하면서도 몇 마디 외운 단어로 열심히 전도하곤 했다. Maria Ocampo 선생님은 당시 우리를 통해 처음 예수를 영접하여 첫 세례교인이 되고, 첫 집사가 되고, 우리 기독교 예술 유. 초.중.고등학교 교장까지 된 분이다.
주일학교 학생이 이젠 학부형
그래도 가게 아주머니는 주일예배에 자신은 못 오더라도 딸 둘을 곧잘 보내주고 이웃 어린이들까지 모아 보 내주어 우리 집에서 주일학교 예배가 자리 잡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 주일학교 학생들이 우리 학교 학부형이 되어 있다. 그때의 어린 아이가 이젠 엄마가 되어 아들의 손을 잡고 유치원에 입학시키러 올 때는 너무 반가웠는데, 그 아들이 벌써 중 3이 되어 있다. 참 세월이 빠르다.
하루에도 사계절이 공존하는 온도 격차
이곳 파라과이에는 하루에도 4계절이 있다. 30 여 년 전 처음 이곳에 도착하여 가정들을 방문하였을 때는‘정말 사람들이 게으르구나, 안 입는 옷들은 장롱에 라도 좀 넣어두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날씨가 아침에 3~5도, 낮에는 35~40도, 1월 에는 간혹 53도까지도 올라가고, 저녁에는 20도, 어제 밤 우리 방안 온도는 35도… 이런 식으로 하루의 온도 격차가 너무 심하다 보니 머리가 자주 아파 버스 안이 나 길거리에는 아스피린을 파는 사람들이 많다. 알고 보니 그때의 우리는 한국 기후에 적응된 체온이 그대 로 있어서 현지인이 겪는 계절이나 기온의 느낌에 대 한 감각이 없었던 것이다.
식비와 생활비가 모자라던 사역자
어느 날 지 교회 전도사님의 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심방을 가보니 아이들은 5명이고 식비와 생활비가 모자라 목회를 할 수 없어 다른 일로 돈을 벌기 위해 교회 목회지를 떠나겠다고 울먹이면서 하소연을 하였다. 남편과 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우리도 한국에서 신학생 시절과 전도사 시절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얘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한국에서 사가지고 왔던 학용품들과 쌀, 국수, 설 탕, 식용유, 밀가루, 과자 등 여러 가지 식품을 준비하여 다음날 다시 가서 드리며 사모님을 위로하고 힘내어 계속 목회할 것을 권유한 후 돌아왔다.
봉고차에 매달리며 환영하는 주일학교 아이들
파라과이 날씨는 여름은 보통 35~40도, 어떤 1월에는 53도에 육박 한다. 그 더위에도 목이 터져라 찬송하며 예배를 드리지만 겨울에는 아침에 소도 얼어 죽는 4~8도, 낮에는 30~40도라 온도 차이로 땀구멍이 수축이 되지 않아 동사하는 경우도 있어 담요를 구입하여 따뜻하게 밤을 보내게 하기도 했다.
회충약만 먹여도 혈색 돌아와
애들 머리에는 이가 많고, 배가 아프다는 애들도 많았다. 신발을 거의 신지 않고 다녀 어떤 아이들은 열 개의 발가락 사이에 상처와 고름으로 얼룩진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 연고를 가지고 다니면서 아픈 상처에GLOBAL PARTNERS 9 선교사 행전10 GP선교회 발라 주기도 했다.
“어른들은 다 거짓말쟁이야!”
우리 집엔 큰딸, 둘째 아들, 셋째 딸이라는 귀여운 자녀들을 주님이 맡겨 주셨다. 큰딸은 고3때, 둘째 아들은 고1, 막내는 초등 6학년 때 파라과이로 오게 되어 자녀교육에 대해서 우리보다 주위 사람들의 걱정이 더 많았다. 말을 못 알아듣고 숙제도 못하고 학교수업시간에 앉아만 있다가 돌아오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늘도 수고 많았지?’ 하고 위로의 말만 했다
파라과이의 ‘정 트리오’
한번은 파라과이에 있는 아르헨티나 문화원에서 주최한‘한국의 밤’이라는 공연에 우리 아이들 세 명이 특별출연 초대를 받아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3중주로 파라과이 국가와 민요와 한국‘가고파’가곡을 연주하여 정 트리오 연주를 크게 칭찬하는 기사가 신문에 실리는 기쁜 일도 있었다. 대학 문제도 시집 장가가는 문제도 제 때 제 시기에 공부를 마치게 하시고 세 자녀가 은혜 중에 혼례를 치르고 믿음의 가정을 세우게 해 주셨고 자녀들 셋이 모두 세 명의 자녀를 두어 아홉 손자 손녀를 주신 것은 축복 중에 아브라함의 축복이었다.
에어컨 없는 차로 교회 세 곳 개척
다시 현지교회 사역 현장으로 돌아가 본다. 그런 무덥고 찌든 날씨에도 7년 동안 에어컨 없는 고물차를 타고 우리 애들 셋과 같이 오전과 오후에 두 곳 교회에서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되었던 시절이 생각난다. 고맙기도 하지. 그 더운 차에서 골아 떨어져 자는 것을 보면서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 차를 가지고 교회 세 군데를 개척하고 교회를 지었으니까 감사할 뿐이다.
정금태, 이복래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