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815 해방의 기쁨으로 태어 났습니다. 만삭의 모친은 목청높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기쁨으로 저를 출산했습니다. 그러나 기쁨은 사라지고 맙니다.
부모님은 백방으로 저를 실려 보려고 온갖 수고를 다하셨고 좋다는 것은 다 해 보았으나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젖도 빨지 못하게 되었고 미음도 넘길수 없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다 입에서 부터 썩어져 가는 그 괴질은 온 얼굴로 점점 범위를 넓혀갑니다. 이제는 더이상 방법이 없고 대책이 없고 희망이 끊어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이 아이가 1주일이나 2주일을 더 넘길 수 없다고 판단하시고는 여기에서 모두 포기하셨고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생매장 할 수 없으니까 숨이 넘어가면 뒷산에 묻는 일이었습니다. 매일 하루에도 몇 번 씩 생사를 확인하는데 그런데 계속 죽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 어렸을 때 이야기는 제가 복음을 모르는 어두운 땅에 사는 이방인이었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부르지도 못했고 저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두 살이 되기까지 부모님에게 고생을 많이 시켰던 아이가 지금 이렇게 목숨 걸고 선교를 하는 주님의 종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기적중의 기적을 입업습니다.
흑암에 사는 사람들과 열방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선교사가 된 것을 주님께 감사하며 목숨이 붙어 있는 날까지 생명 다해 선교하려고 합니다.
가나 최북단의 이 가난한 마을은 예수 이름을 몰랐고 크리스마스가 무슨 날인지도 몰랐던 마을입니다. 주님께서는 저같이 부족한 종을 이런 곳으로 가나지도 한 장만 들고 찾아 가게 하셨습니다. 보코마을에 주님의 교회를 개척하게 하셨고, 삼볼고마을과 아위씨마을에도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매년 몇번씩, 그리고 성탄절에는 이 먼 곳을 갑니다. 두 아들 선교사외에 동역 선교사들, 현지인 동역자들이 동행했습니다.
이번에는 작은 아들 선교사가 손주들과 함께 다녀오기로 했는데 코로나로 상황이 저희만 다녀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수도 아크라와 가나 북부의 무슬림 최대도시인 타말레간을 경 비행기편을 이용, 여행이 옛날보다 편하고 쉬워져서 감사합니다. 존 아바니 형제는 노중 1박하고 내일 도착합니다.
이번에는 아내 김영신 선교사 존 아바니 형제와 최소 인원으로 가나북부선교를 하였습니다. 880킬로의 미션베이스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가나 북부 최용순, 김영신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