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y Lawoze (이슬의 집)” 걸스홈과
“Amelia Women Center(아멜리아 여성센터)”
2021년은 저희 DFI에 아주 특별한 해입니다. 1월에는 걸스홈을 오픈했고, 2월에는 여성센터 오픈을 위한 계약을 했습니다. 여성사역이 드디어 열리는 역사적인 해입니다.
DFI는 고아와 과부사역을 부르심으로 그리고 구체적인 사역의 방향으로는 “Teaching (교육)”, “Preaching (말씀사역)”, “Healing(의료)” 라는 예수께서 공생활 동안에 집중하셨던 세 가지 사역을 중심으로, 2012년 1월 DFI가 미국에 정식으로 단체 인가를 받고 5월에 아이티에서 개원 예배를 드리며 그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길거리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고아들에게 학교를 세우고 직업교실을 통해서 “교육사역”을 해왔고, 아이티 심장병 아이들을 한국의 유수한 의료시설과 연예인 선교단체인 GIL Ministry와 함께 “의료사역”에 집중해왔습니다. 지금까지 100여명이 넘는 아이티인들이 저희 DFI를 통해서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고, 목회자 재교육및 아이티를 위한 중보기도회등을 개최하는 등 “말씀사역”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늘 여성사역은 풀리지 않는 커다란 숙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직업교실을 몇차례 시도했지만 열악한 재정으로 인해 늘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2019년 11월, 주님께서는 13살로 임신을 한 어린 소녀와 16살 그 언니를 저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여성쉘터가 없어서 돌봐줄 수 없다고 거절했지만 주님께서는 이 두 소녀를 당장 데리고 와서 돌보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두 소녀를 길에서 데리고 온 날 저녁, 이 어린 13살 어린 소녀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핏덩어리어린 아이를 안고서야, 저는 주님께서 이 생명을 사랑하사, 이 두 어린 소녀와 어린 생명을 거두라는 명령을 하셨음을 알게 되었고, 그날 주님께서는 이런 어린 소녀들을 돌보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성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코비드가 바로 이어서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고, 재정적으로 불안정해기시작해서 저는 걸스홈을 미루었습니다. 그리고 여성센터를 먼저 오픈할려고 장소를 구하고 계약해서 공사를 시작했지만 무슨 일인지, 집주인이 마음을 바꾸어서 그곳에서 억울하게 쫒겨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코비드에 걸려서 사경을 헤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코비드로 죽음 앞에서 저는 제 안에,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지 못하는, 세상을 향한 미련이라는 견고한 진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호흡이 남아 있던 그 죽음 앞에서 예수 이외에는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 수술칼로 고름덩어리를 도려내듯이 그것을 도려내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사망의 깊은 골짜기에서 구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헌신을 받아내신 주님께서는 제가 병원에서 나와서 몸도 채 추스리지도 못한, 퇴원 2주만에.. 굶주림에 시달리고, 아이들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못된 원장 밑에서 더러운 물들을 마시며 살고,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 13명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 중, 8명이 여자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아이들을 향한 불같은 마음을 저에게 주셔서, 이 아이들 모두 거두고 싶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들을 돌보는게 주님의 뜻이라면 주님께서 2만불을 주시면 집을 얻고, 준비하는 초기 자본이 되니까 보내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기도한지 24시간도 안되어서 2만불을 채워주셨습니다. 마침 2만불을 놓고 어디로 보낼까요 라고 기도하시는 집사님께 주님께서는 저희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차량도 사야하고 나머지 시설도 해야 하는데요 라고 주님께 혼자 중얼거린지 12시간도 안되어서 또다른 집사님을 통해서 2만불을 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걸스홈을 위해 헌금해주셔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원하시고 바라시는 사역인지를 보여주셨으니까요. 하지만 고아원 원장은 이 아이들을 그냥 저에게 주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매일 이사람 저 사람을 시켜서 협박 전화를 했지만 주님은 승리하셔서 이 아이들을 무사히 데리고 오게되었고, 그리고 드디어 이 아이들을 데리고 걸스홈을 열게 되었고, 여기에 13살 소녀와 그 언니 그리고 1살의 어린다니엘이 합류해서 11명으로 걸스홈이 오픈되었습니다.
DEVELOPMENT FOR FREEDOM INTERNATIONAL
그리고 여성센터를 계약했지만 쫒겨나서 어디에 오픈해야할지 아무리 장소를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저에게 주님께서는 72년 된 유서깊은 침례교 컴파운드에 있는 큰 규모의 여성센터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곳은 Wallace Turnbull목사님과 그 사모님이신 Elearnor, 두 분께서 전 인생을 바쳐서 72년간 일궈 오신 유명한 곳입니다. 특히 엘라노어 사모님께서는 “교육”, “건강”, 그리고 “경제자립”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여성사역을 위해서 ‘Mountain Maid”라는 프로젝으로 레스토랑, 베이커리, 기념품 샵, 비닐하우스 재배, 틸라피아 물고기 농장 그리고 도자기 굽는 곳등을 활발하게 운영해오시면서 여성들을 가르쳐서 이 비즈니스센터에서 실습하게 하셨습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이곳에서예수를 믿고, 인생이 바뀌고, 남자를 찾아서 헤메거나, 자식들을 키울수가 없어서 고아원에 보내지 않고,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돌보고 자신을 돌보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엘라노아 할머니가 연세가 많아지고, 아이티가 정치적으로 어려워지면서, 많은 외부에서 오는 팀들의 관광 수입 그리고 헌금으로 유지되던 이 미션이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여성센터는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엘라노어 할머니의 여성센터를 제외하고는 병원과 교회도 아직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2019년에 한 미국인 선교단체에서 그 여성센터를 인수해서 엄청난 투자금을 가지고 리노베이션을 시작하여서 이곳저곳을 부수고, 다시 변경하는 도중에 코비드가 와서 이단체는 손을 들고 나가버렸고, 그러다보니 이곳은 마치 폐허처럼 보입니다.
2020년 10월, 저를 딸처럼 사랑해주시던 엘라노어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 장례식이 가니, 코비드라서 그런건지...장례식은 너무나도 조촐하고 쓸쓸했습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손녀딸이 조사를 말하는데, 이 할머니의 정신이 그대로 이어지기를, 누군가가 할머니의 유지를 이어가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왠지 모르게, 그게 저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었습니다. 할머니의 사랑도 갚고 싶었지만, 무엇보다도 한선교사가 일생을 바쳐서 72년동안 헌신해온 사역이 이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그대로 사라진다는 것이 저는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같은 선교사로서 하나의 밀알이 이 땅에 떨어졌는데 수많은 열매를 맺었지만 계속해서 이 일이 지속되지 않는 것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할머니께서 헌신해 오신, 교육과 의료와 경제적 독립은 제가 계속해서 해오던 사역의 방향과 같았기 떄문 입니다. 그래서 장례식 끝나고, 이 미션을 물려받은 젊은 41살의 다니엘 쟝루이라는 회장님에게 제 뜻을 나누었습니다.
이 회장님은 처음에 만났을 때 저를 재정이 넉넉한 단체장인줄 아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주 간단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이 여성센터를 운영할 자금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7년 동안 믿음으로 물위를 걸어왔고, 이 여성센터도 그렇게 주님이 채워주실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믿고 주시면 받고 아니면 안주셔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 회장님도 이상한 분이시지요. 그 자리에서 너무 마음에 든다면서 이 센터를 저에게 주기로 결정하고,10년 계약에 제가 이 단체의 이사회 멤버로 들어오라는 제안까지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평소에 너무너무 꿈꾸던 모든 사역들이 다 한꺼번에 집중되어 있고 이미 시설까지 있는 곳을 그대로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페이스북에비디오를 올리니, 너무 많은 분들이 축복도 해주셨지만, 걱정이 대단하셨습니다. 어떻게 이 사역을 감당할건지... 하지만, 저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제가 제 뜻대로 하는 일에 대한 기준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직접 하라하시는 경우입니다. 어린 두 여자 아이를 돌보고 걸스홈을 만들라고 하신 것은 분명이 하나님께서 직접 인도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제가 나서서 몸이 달아서 난리를 치지 않아도 마음에 크게 감동이 오고, 기도를 하고 있으면, 그것이 저절로 저에게 오는 경우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걸스홈이 첫번째 경우이면, 여성센터는 두번째 경우입니다.
이제 큰 사역이 시작됩니다.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저의 대책은 하나님 한분 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고 기적을 베푸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로 함께 해주셔서, 이 여성센를 통해서 수많은 여성들이 영적인 자유를 얻고, 경제적 자유를 통해 남자들을 찾아 헤메지 않고, 그래서 아버지가 다른 자식들을 낳아가며 고아를 양산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Agape; Boys home
걸스홈을 열게 된 그 바닷가의 고아아이들 중 5명의 남자아이들이 저희 남자 아이들만의 집인 아가페에 합류하게 되면서, 아가페는 45명의인원을 기록하며, 전례없이 북적거립니다
아이들 숙소가 돌아오는 4월에 임대 만기가 되는데, 걱정이 많았습니다. 이 아이들을 데리고 갈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집주인은 심심하면 한번씩 이메일을 보내서 나갈 때가 되어간다는 것을 저에게 주지 시키면서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땅을 놓고 기도를 해도, 땅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이티는 소수가 80%의 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땅이 개발되지 않고 놀고 있어도, 땅값은 여전히 비싸고, 집이 텅텅 비어져 있어도 집값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지진 전에는 집값이 정말 싸고 좋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진복귀를 위해 수많은 단체들이 들어오고, 망가진 집들을 찾기가 어려워지면서 아이티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저희가2에이커 땅을 놓고 50만불을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아직 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식으로 주님께서 채워주
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역은 제 사역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구걸하고 버려진 아버지의 자녀들의 회복을 위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간증하나 나눕니다. 2020년 12월 31일, 제가 몸담고 있는 한인교회에서 기도를 하면서 그랬습니다.
“주님... 저는 단 한번도 제가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사역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갑자기 주님의 말씀이 임하셨습니다.“내가 너에게 가장 소중한 사역을 맡겼다. 그것은 바로 생명을 살리는 사역이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요...구제사역은 밥먹이는 사역이니 말씀전하고 교회 세우는 사역해야지 제가 언제까지 고아들만 돌보냐고 그랬거든요.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지는데 한 영혼이라도 얼른 전도해서 주님께 오게하는 사역해야지요...그런데 주님 말씀은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이 아이들을 돌보는 사역이 “생명을 살리는 사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생
명은 육체적인 생명도 말씀하셨겠지만 아마도 영적인생명도 말씀하셨겠지요. 교회를 세우는 사역도 중요하지만 말씀전파와 더불어 구제 사역이 빠지면 앙꼬가 빠진 찐빵과 같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주
님은 우리가 나누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만 나누는게 아니라, 우리의 식탁도 나누기를 원하신 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추수할 때, 모퉁이를 남겨 놓으라는 주님의 말씀, 과부와 고아를돌보라는 주님의 말씀의 의미를 정말로 뼈저리게 느끼게 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 버려지고 상처받은 아이들이 안전하고 또 편안한 시설에서 잘 자랄 그리고 더 많은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땅이 필요합니다. 그 땅에서는 최고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찬양이 24시간 끊이지 않고, 예배가서고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 될 것입니다. 땅이 필요합니다.
함께 기도해주세요.
아이티 김혜련선교사
· 게시일 : 2021-03-01 12:2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