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는 거꾸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니 이기거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는 결과만을 추구하는 세상의 방식이기도 했다.
수단(手段)은 어떤 일을 처리해 가는 솜씨나 꾀라고 정의한다. 방법은 어떤 일을 해나가거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정당해야 된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네거티브를 하든 언론공작을 하든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이기면 되었다.
엊그제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뉴스들이 북미정상회담에 가려 묻히거나 희석되었다. 분명 자격미달이거나 의혹이 큰 인물들이 당선되기도 했고 이는 이후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모르지만 당장은 당선이라는 꽃다발를 들고서 득의만만하게 사진을 찍고 있다. 어쩌면 그 임기가 끝날 때까지 설왕설래를 거듭하다가 시지 부지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독하게 네거티브를 가했던 후보들도 대세가 결판난 뒤에조차 왈가불가를 더하지 않고 넘어갈 것이 자명(自鳴)하다.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없다고 하듯 너나없이 다 흠도 많고 점도 많기 때문에 어찌하든지 상대를 흠집 내려 침을 튀겼을 뿐 버스가 떠난 뒤에는 자신의 구린 뒤를 감추기에 급급한 까닭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시종일관(始終一貫)을 요구한다. 처음과 끝이 같아야만 한다. 세상의 조류나 방식이 아닌 것이다. 정당하지 못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얻어내는 결과에 박수를 치지 않는다. 기독교는 오히려 결과보다는 과정(過程)을 더 중시한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을 듣기 위해선 그 마지막 순간에 한 회개(悔改)였다. 회개 즉 돌이키는 과정이 없이 의롭다 함을 받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돈이나 권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에는 믿음을 이룰 철저한 회개와 자기 부인이 필요하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은 매우 성경적인 교훈이다. 사람이 자기의 할 바를 다한 뒤에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의미다. 이런 말씀이 고린도전서 3장에 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심고 물을 주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진인사와 같다. 그러나 자라나게 하는 것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영역인 것이다. 무엇을 믿느니 차라리 내 주먹을 믿겠다는 장담을 하는 사람이 있으나 언젠가 그는 참으로 그렇게 말한 책임을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그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까닭이다.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눅12:25,26)는 말씀을 부정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주신 면역력이 아니면 사람은 자신을 공격하는 바이러스나 병을 방어하지 못한다. 아프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죽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크고 작은 병에 걸린다. 아프고 늙고 사고를 당해 원치 않는 죽음을 맞이한다. 자신의 몸이나 생명을 자기 스스로 제어하거나 건사할 수 있다면 아플 사람도 죽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프지 않고 죽지 않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마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하게 사용하기를 원하셔서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이만큼 어리석은 짓은 다시없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수는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조건들이 있다. 정당하고 올바르며 상생(相生)하는 수단과 공의와 절제에다 자기의 희생과 헌신이 더해지는 방법일 때 대천명은 빛이 나며 자라나게 하심을 따라 순리와 순응이 박수를 치게 된다. 이제는 더 이상 거꾸로 가도 서울만 가는 결과로 어긋나지 말고 이기는 것이 충신이라는 유혹에 자신을 팔지 말자. 인생에게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내세 곧 영원한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김한맥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