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말은 주인과 손님이 뒤바뀌었다는 의미로, 의외(意外)의 또는 있어서는 안 될 상황에 대한 설명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은 그리 좋은 현상이 아니다. 평범(平凡)이 아닌 비범(非凡)이라거나 평상(平常)이 아닌 비상(非常)을 나타내기도 하는 까닭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참 많다. 그런데 그런 일들 중에 안 좋을 것 같다는 예감은 참 잘도 들어맞는다. 대신 좋을 것 같다는 예감은 거의 틀린다. 나쁜 것은 틀리고 좋은 것은 맞는 반대의 상황이 되면 좋으련만 그것은 그저 바람이라는 진부한 대답으로 되돌려지고 만다.
주객전도의 상황을 두서너 가지 짚어보자. 국민이 정치를 염려한다는 이야기가 요즘 길거리에 넘쳐난다. 하기야 언제 한 번인들 정치가 국민들의 마음을 속이 시원하게 뚫어준 적이 있었던가? 눈 가리고 아웅도 유분수지 선거철이 아니고서는 국민은 언제나 지렁이와 다름이 없었다. 민생현안은 어느 집의 개가 짖느냐고 할 정도로 늘 뒷전이거나 찬밥이었다.
그들은 똥에 파리가 꾀듯 이익과 단합과 명예와 권력의 동아줄을 붙잡고 그것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일편단심에 요지부동이었다. 강함 앞에 엎드리고 약함 위에 군림하느라 약자를 향해서는 눈길 한 번 주는 것도 아까워했다. 파렴치의 대명사가 곧 정치가와 정치인과 정치꾼이었던 것이다.
정치(政治)는 첫째 국가의 주권자가 그 영토 및 국민을 통치함과 동시에 국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과 둘째는 여러 권력이나 집단 사이에 생기는 이해관계의 대립 등을 조정·통합하는 일이라고 사전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정치의 중심이 되는 통치(統治)라는 말은 다스린다를 넘어 보호한다는 의미가 앞서야 한다. 따라서 정치는 다스리며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안녕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권자가 정치를 할 수 있는 힘은 당연히 국민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것은 보호를 받아야 할 국민이 정치권의 아전인수, 파렴치, 무지몽매, 이합집산, 적아불명, 자가당착에 식상해하며 그들이 쥐고 흔드는 권세를 염려해야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대다수의 정치가(자청하여 부르는 이름)들은 민주주의 형태의 정치적 특성인 삼권분립에 의해 입법부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입법부는 말 그대로 나라의 법을 만드는 기관이다. 그런데 이 대목이 참새가 하품을 하며 고개를 외로 꼴 기(氣)가 막히는 장면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다는 말과 같이 자칭 정치가들 중에 어떤 이유로든 불법 한두 번을 저지르지 않은 정치가(?)가 거의 없다는 아이러니가 현실이다. 법을 어긴 자들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법을 만든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법을 어길 개연성이 가장 큰 자들 역시 정치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민의 보호나 안녕은 거론할 여지조차 없다. 정치가들이 국민의 말에 귀를 기이겠다며 읍소를 하는 바로 그 선거철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때이다. 국회가 개점휴업을 하고 있을 때이니 민원은 립서비스를 벗어나지 못한다. 낙선을 하면 못들은 말이요 당선을 하면 검토하다가 임기를 끝낸다. 어느 세월에 국민의 소리를 듣는단 말인가? 이래저래 정치가들이 하는 말은 자칫 귀신 씨 나락을 까먹는 공약(空約)에 불과하다.
국민은 정치를 염려하는 것을 넘어 완전히 실망하고 식상해한다. 그럼에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 뚜렷한 방법도 없다. 겨가 묻은 것이 아니라 똥이 묻은 후보들끼리의 놀음이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옳은 것일까? 선택은 개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신성한(?)한 의무로 누워서 침을 뱉듯 안면 있는 인사를 찍을 수밖에 없다.
정치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못하지 않은 주객전도가 세상이 교회를 염려한다는 말이다. 세상은 절대 교회를 염려할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죄가 들어왔기에 생겨났다. 그러니 죄악 된 세상이라는 말은 싸잡아서 뱉어내는 말이 아니다. 죄가 없었다면 이제도 여전히 에덴동산일 것이요 이것이 저것을, 저것이 이것을 염려하거나 편을 가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셨던 것처럼 염려나 근심이라는 말은 아예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상이 교회를 염려한다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요 되지도 않는 말이었을 것이다.
죄 된 세상은 정화(淨化)가 되어야 한다. 죄 된 세상은 어둡다. 그리고 썩는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교회)가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고 썩는 것을 방지하는 소금이 되라고 하셨다.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지 세상이 교회에 대하여가 아니었고 아니어야만 한다. 문제는 현실이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있어서는 안 될 주객전도가 일어난 것이다.
자신의 가치는 명함(직책)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있다는 말이 있다. 정치라는 권력이나 교회라는 이름만 가지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변화는 꿈도 꿀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세상은 허례허식(虛禮虛飾)이 당연시 되고 있다. 예수님이 지극히 경계하셨던 회칠한 무덤 같이 되어버렸다. 안에서는 썩어 코를 틀어막아도 부족할 만큼 냄새가 진동을 하지만 겉은 멀쩡하다.
좀 괜찮다는 물건을 사보자. 내용보다 포장이 대단하다. 싸고싸고 또 싸서 겨우 포장의 몇 분의 일도 되지 못할 알맹이가 나오기도 한다. 여자 40,50대의 화장은 화장이 포장(包裝)이라고 부른다지만 과대포장의 병폐는 물건을 보호하거나 꾸리는 정도를 훨씬 벗어나고 있다.
미국에 있는 건물들은 대다수 겉이 우중충하다. 한국이나 일본 같은 화려함이 겉으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안에 들어 가보면 겉과는 영 딴판이다. 나사렛에서 뭐 선한 것이 나오랴 했으나 만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거기서 나오셨다는 말씀과는 감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겉이 우중충한 미국의 집들은 대다수 안이 화려하고 실속 있게 갖춰져 있다. 최소한 회칠한 무덤처럼 겉만 번드르르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과도한 포장도 주객이 전도된 것과 같다.
또 있다. 한국사회에서 깡통전세라고 불리는 것이다. 집값이 전세 값보다 적은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전세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여당이 강남불패라는 공식에서 치명타를 맞은 것이 감당하기 어려운 전세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올 정도다.
전세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이뤄지는 부동산 임대방법이다. 미국에도 한국과 이웃하고 있는 일본이나 중국에도 전세제도는 거의 없다. 은행의 콧대가 높아 대출을 받기가 어렵고 이자가 높을 때는 집을 여러 채 가진 집주인의 재산증식에 전세는 톡톡히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자가 점점 떨어져 월세를 받는 것이 유리해지자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현상으로 급변하게 되었다.
전세물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였고 당연히 전세 값은 치솟았다. 그러니 일부지역에서는 집값보다 전세 값이 더 높아 집에 문제가 생기면 전세 돈을 회수할 길이 없는 것을 일컬어 빈 깡통이 되었다고 풍자하는 것이다. 이도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다.
사람과 바둑을 두어 이긴 사례로 인해 요즘 알파고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고 있다. 컴퓨터는 어찌되었든 사람이 만들었고 사람이 조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사람이 컴퓨터에 의해 조종을 당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일자리마저 침범을 당하는 그래서 생존의 존망에 이르는 기현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도 분명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다.
국민이 정치를 염려하고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알맹이보다 포장이 더 화려하고 집값보다 전세 값이 더 비싸고 사람이 만든 컴퓨터가 사람을 조종하는 이런 일들은 분명 주객이 전도된 정도를 넘어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를 고치고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요즘 사람들이 잘 쓰는 원조 즉 본질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미쳐 날뛰는 세상이 말씀으로 잔잔하게 되어야 한다. 이는 사람의 힘이나 세상의 이치로는 되지 않는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객전도를 되돌리는 믿음의 고백도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을 믿는 것이다. 이를 매우 유식한 순수 우리말로 온새미로라고 한다.
지금은 순수해질 때이다. 겉포장이나 하고 겉멋이나 부릴 때가 아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가 아니라 온새미로로 돌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필요한 때이다. 더는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주객전도가 있어서는 안 된다. 세상이 어떠해도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사람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안 되는 안 되는 것이다.
김한맥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