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방송사에서 취재하여 방영한 충격적인 내용을 보았다. 은혜로교회의 신00목사(?)와 그의 아들이 공모하여 벌이고 있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하나님을 빙자한 행태였다. 방영된 내용대로라면 이는 기독교 이단이 아니라 범죄 집단의 사기며 착취요 폭력에 지나지 않았다.
교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여 다 교회가 아니며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였다 하여 다 기독교도 아니다. 파렴치를 넘어 인면수심을 지니지 않고서야 어찌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에게 타작마당이라는 허무맹랑한 교리를 도입하여 폭행하도록 조장하고 아이들을 학교에도 가지 못하도록 학대할 수 있겠는가? 이는 마귀의 집단일 뿐이었다.
이 벌건 대낮과 같이 열려진 세상에서 어찌 일개 여인의 유혹에 빠져 4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다 팔아서 바치고 피지라는 낙토(樂土)로 이주할 수 있으며 거기에서 끝내 지옥을 맛보는 낙토(落土)로 추락하고 있는가?
참으로 무서우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사람들을 죽이고 파괴하는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으며 어찌 그런 유혹에 넘어가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다 빼앗긴 채 지옥의 나락에서 신음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기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중에 가장 추잡한 것이 사람일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닮은 존재였으되 사탄의 유혹을 받은 뒤부터는 사탄보다 더 악해진 것이 사람일지도 모른다. 살인, 배반, 시기, 모략 등으로 점철된 인간사를 보더라도 얼마나 추악하게 변질이 되었는지 그 정도가 짐작이 된다.
나 자신이 무섭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두렵다. 나와 우리의 인면 속에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만약 정말로 만약에 이런 사람을 정케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시지 않았다면, 이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사람이 여기까지 하나님을 배반하며 지어온 죄를 생각하면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대로를 활보하는 그 자체가 뻔뻔함의 극치다. 이런 글을 쓰는 나도 포함해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 것처럼 행동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은 예수님,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나와 그리고 우리 모든 사람의 죄 값을 치르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주셨다는 그 유일한 이유 때문이다.
예수님이 사람을 위해 죽으시면서 하신 ‘다 이루었다’는 그 말씀에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한 오리라도 남김이 없는 온전한 죄의 대가와 창조하셨을 때로의 완전한 회복이 다 포함되어 있다. 죽어 마땅한 죄인이지만 죄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대신 죽으심으로 살 수 있게 된 사람을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덮고 있다.
문제는 이런 은혜와 사랑에서 벗어난 일부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그 속삭임으로 미혹되어 벌이는 악랄한 행위다. 집안에 있는 도적은 방비하기가 어렵듯 사람의 모습을 하고 벌이는 그 참담한 만행(蠻行)들은 예측조차 하기가 어렵다.
피지가 낙토(樂土)라는 사기극을 벌인 주체 신00은 구속이 되었으나 과천의 은혜로 교회와 피지의 위정자들을 등에 업은 그레이스 그룹은 아직도 건재하다. 그리고 차마 상상하기조차 난해한 무조건적 동조자들이 그 낙토(落土)의 보루를 지키며 치유와 회복을 거부한 채 제2, 제3의 피해자들을 향해 파멸의 촉수를 뻗히고 있다.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물으시는 주님의 애잔한 음성이 아직도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파고든다. 사람을 위해 죽어주신 주님의 원하심, 그 반대에서 회심의 비웃음을 짓고 있는 사탄의 추종자들이 아니라 주님의 편에 굳건히 서 있노라고 자신하는 성도들을 향해 하시는 주님의 말씀인 것이다.
최소한 목사라면 낙토(落土)에서 신음하는 자들을 낙토(樂土)로 이끌 수 있는 사명자여야만 한다. 교회의 이름을 빙자하여 벌이는 신00과 같은 자들에 대해 예수님이 피 값으로 사신 온전한 교회와 성도들은 얼마만큼 가슴을 치며 책임을 통감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오늘 그것이 알고 싶으실 것이다.
김한맥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