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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하는가?
아브라함은 노아의 홍수가 지난 후 바벨탑 사건을 넘어서도 한참 뒤에 나타난 세대의 사람인데 어떻게 조상이라 할 수 있는가? 실질적으로는 아담이나 노아가 믿음의 조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혹 아담은 하와와 함께 선악과를 먹어 조상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해도 실질적인 믿음의 조상은 노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아무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 시대에 방주를 만들어 홍수를 준비했고 당대 의인이요 완전한 자였으며 하나님과 동행했으니(창6:9) 당연히 노아가 조상이 되어야 할 것만 같다. 그럼에도 성경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한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하는 데는 세 가지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먼저는 아브라함 이전의 역사를 통해 조명해야 한다. 홍수가 지난 후 노아와 가족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올리며 믿음으로 살 것을 서원했을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무지개를 보내시며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을 것을 언약해 주셨다(창9:11).
그 후 노아의 후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셋째 아들 함이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었음을 고발한 후 역사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노아는 셈과 야벳을 축복하며 번성할 것을 약속했지만 함의 자손들에게는 저주스러운 유산을 남겨주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9:25)” 이 저주는 비극의 비극을 낳았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주인이 되고 어떤 사람은 종이 되었다.
상전과 노예로 나눠진 사람들이 행복할 리가 없었다. 시대가 지나면서 사람들은 점차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사람들이 흩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큰 탑을 쌓아 구름처럼 높여 어디서든지 그 탑을 보고 찾아 올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인간의 위대함을 드러내길 원했다.
노아가 죽은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사람들은 바벨탑을 쌓으면서도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었다. 창세기11장의 바벨탑사건을 읽을 때마다 이해되지 않고 의문이 들었다. 노아의 후손인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야기를 쏙 빼 놓고 인본주의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에게 순종하기보다 자기 의지를 더 좋아하고 유혹이라는 핑계로 불순종에 이르는 원리와 같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 시대에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없었다.
결국 기원전 2000년경으로 추정되는 아브라함 시대에는 다시 영적진공상태가 되어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없어졌다. 이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었고 아브라함은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의 출발을 보였다.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면으로든지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믿음이 이어오고 있으니 말이다.
두 번째는 아브라함 자신이 하나님 앞에 믿음을 보임으로 시조로 인정을 받았다. 가장 큰 하이라이트는 모리아산의 사건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결정하며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드리기로 했다. 아들과 함께 제단이 있는 산에 오른 아브라함은 아들에게 말했다. 사실 하나님이 너를 바치라고 명하셨다고. 이에 이삭도 아브라함도 말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결국 아들 대신 양을 제물로 드리게 되었지만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완전하게 신뢰하게 되었으며 복을 받았고,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22:16-18)”
셋째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자기소개에서 믿음의 조상을 찾을 수 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 아들 이삭이 그랄에서 거주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들이 이삭과 우물을 가지고 싸움을 붙여 왔다. 이에 이삭은 세 번씩이나 우물을 양보하며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성경에는 쿨하게 양보하고 떠난 것 같지만 양을 키워야 하는 이삭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는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자 그때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나시며 자기소개를 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창26:24a)”
그 후로부터 하나님은 후손들에게 나타날 때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임을 강조하셨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아비의 축복기도를 가로챈 후 아버지와 형 에서의 미움을 받아 고향을 떠났다. 쫓겨난 신세로 맥이 빠진 야곱이 벧엘에서 돌베게를 하고 잠이 들었을 때 하나님이 꿈속에서 나타나며 자기 소개를 하셨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창28:13)”
이스라엘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430년간 타 민족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자유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다. 미디안 광야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특명을 주셨다. 황당해 하며 어리둥절해 있는 모세, 그는 하나님께 물었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를 보낸 당신을 어떻게 소개 하리이까?”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3:15).”
아브라함은 이렇게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내가 어떤 성도가 되길 원하실까?
최창원목사(새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