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말씀 하시기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42). 당신은 깨어 있는가? 우리는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다는 것은 매 순간 깨어있는 의식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진정한 욕구와 능력과 의무가 무엇인지 알며 동시에 그 아는 바를 실천에 옮길 수 있고 자신의 입장을 통찰 할 수 있는 지적능력과 그것을 실천 할 수 있는 의지력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된 나를 마주 대하며 나에게 주어진 삶을 누리는 것이다.
죄의 삯은 오직 사망일 뿐이다. (로마서 6:23) 잔인한 살인을 하고 이제 죄인의 삶을 마감하는 사형수! 그 사형수를 바라보며 느낀 이야기가 있다 사형수를 바라보면 저렇게 인생을 마무리 짓는다는 것이 더없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사형 집행을 중지할 수 있는 사면권을 가진 사람이 이 사형 집행을 멈춘다면 이 사형수는 얼마나 좋아할까? 만약 그가 죽음에서 살아난다면 그는 누굴 위해 살아갈까? 당연히 죽을 목숨이 살아난 것에 감사하며 평생 자신을 사면해 준 사람을 위해 살아가지 않겠는가!’ 한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내려치는 음성이 들려왔다. ‘ 야 인마, 저 사형수가 바로 너다, 너!’ 그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었다. ‘ 내가 큰 죄를 짓고 죽음을 앞둔 사형수라고!’ 하지만 곧이어 나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죄로 말미암아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 그 사람이 실은 나였던 것이다. ‘ 그래 맞다. 나는 사형 선고를 받은 죄인이지. 맞아요, 하나님. 제가 저기 앉아야 할 사형수였죠. 그런데 저를 영벌에 처하지 않으시고 사형 집행을 면해 주셨습니다. 제가 사면받은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마음속에 성령의 안약(계 3:18)이 눈에 발라져 있으므로 자기 자신을 명료하게 본다. 깨어 있는 사람은, 깨어나지 않은 사람이 육신의 자아로부터 올라오는 감정이나 생각에 휘둘리지 않으며 매 순간 깨어서 자기 자신을 지켜 보고, 안다. 다시 말해 육신의 자아가 얼마나 자주, 아니 얼마나 지속적으로 살아나는지, 어떤 욕망을 일으키고, 어떤 방어를 하게 하고, 어떤 것에 집착을 하게 하는지 그리고 그 육신의 자아가 일으킨 생각과 감정이 생(生)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아픔과 뒤얽힘들을 만들어내는지 또 우리의 육신에 붙은 에고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때론 훌륭한 영적인 모습으로, 때론 야비한 세속적인 모습으로 모양을 바꾸어 나타나 혼돈시키는지를 안다. 그래서 깨어 있다는 것은 자아로 부터 풀려나는 것으로 자신의 사고와 의식, 존재감 등에 억매인 자아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영적 멘토링은 육신의 자아는 죽고 마음 속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도록 항상 깨어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육신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 가도록 하는 것이다 김정태목사 ceok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