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교에 특강 차 방문했을 때다. 강의가 끝나자 학생들이 많은 질문을 했다. “사업은 어떻게 시작하셨습니까?”, “사업하실 때 제일 어려웠던 때는 언제였나요?”, “요즘 행복하세요?”, “누구를 존경하십니까?” 같은 질문부터 “취업 면접 요령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기업을 크게 경영하시고 부자이신데다 건강하시기까지 한데 무슨 비결이 있으십니까?” 등등 별의별 질문이 쏟아졌다.
나는 평소 과장하거나 꾸며내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다. “여러분처럼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기가 힘들어 성적증명서와 졸업증명서를 수십 통 씩 가지고 다니며 응시했습니다. 그러다 겨우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취직이 됐는데 기독 청년이다 보니 당시 만연했던 술, 담배로 시작하는 접대 문화를 피하는 것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솔직한 이야기에 학생들이 점차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찌나 열심히 영업을 했는지 걸어가다 보면 구두닦이가 뒤를 쫓아와 ‘구두 뒷굽이 다 닳았다’고 얘기해 줄 정도였습니다.” 실감 나는 현실적인 경험담에 학생들의 눈빛이 빛났다.
나는 항상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느끼면서 세상을 살아왔다는 말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그러자 학과장 교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강의 시간에 특정 종교를 언급하는 것은 금기 사항이라고 한다. 그래도 나는 웃으면서 “내 생활의 기둥은 성경 말씀이고 나는 이 속에서 세상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하니 모두들 숙연해지고 눈빛에 거부하는 기색이 없었다. 강의를 마치고 총장님 방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학생 몇 명이 과일을 들고 들어왔다. 오늘 강의 아주 감동적이었다고 해 나 역시 흐뭇했다
그리고 학생들과 한참 이야기꽃을 피웠다. 개인적인 상담을 해도 되겠느냐며 조심스레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길을 모두 열어 보이고, 나에게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조언을 구한다.
일일 멘토가 되어 학생들과 기쁘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나 다음에 또 이야기를 나누자며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학교로부터 받은 강사료를 식사하라며 건네주니 학생들이 무척 감사해 하고 기뻐했다.
언젠가 기악 전공교수와 대화 중에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과 학교 앞 카페에 모여 차 한 잔 하면서 학생들의 진로 상담이나 유학 상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여러 삶의 조언, 심지어 연애 상담까지도 해 주다 보니 학생들 사이에서 교수보다는 큰언니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청탁금지법이 생기고 나서는 그 카페에 못 가게 됐고 코로나로 이어지면서 학생들과의 교류가 사라졌다고 했다.
세상이 점점 삭막해지고 있다. 이처럼 학생과 교수 간의 따뜻한 정이 사라지고 감성 교육의 끈이 끊어지는 것 같아 참 아쉽다.
최후의 만찬 그림을 떠올려 보자. 예수님 무릎 위에 누워있는 요한의 모습과 제자들의 열띤 모습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끈끈한 정을 엿볼 수 있다. 초대 교회는 예배 때마다 성만찬을 했다. 포도주와 빵으로 잘 차려 놓고 성도끼리 활발히 소통하며 교제했다. 일찍 왔다가 술에 취한 사람들이 예배를 방해했다는 말도 있지만, 당시의 성만찬은 성도 간에 밀접한 인간관계를 형성했으며, 오늘의 기독교를 만들었다. 떡을 떼는 것을 예배만큼 귀중하게 여겼던 초대 교회의 전통을 지금도 아름답게 지키는 교회도 많다.
이것이 우리 사랑의 기초가 아닌가 생각한다. 기독교의 기본이 사랑이라면, 사라진 교수와 제자의 정겨운 대화는 어떠한 법에 의해서도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스승과 제자의 사랑을 청탁이라는 시각으로 보지 않고 사랑이라는 시각으로 보는 성숙한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성경 구절을 되새겨 본다.
강덕영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