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기 전 성만찬 하시던 자리에서 하신 기도입니다. 첫 번째 기도 제목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4절) 이는 예수님의 공생애 목적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겪어야 했던 시련과 고난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주님은 견뎌내셨고 이로 인해 인간이 하나님께 가는 새로운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이는 인간의 운명을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셨습니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라는 분이 그린 성화 중에 ‘위에서 내려다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십자가를 보라는 것이지 않나 싶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가를 보여주기 위하심입니다. 결국 죄를 용서하시지만 묵과하지는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 짐을 지셨던 것입니다.
오래전 이 4절 말씀을 묵상하다가 예수님의 소원을 내 소원으로 품을 수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요17:4은 삶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자주 주님 앞에서 ‘오늘도 나는 아버지가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했는가?’ 스스로 질문하곤 합니다. 돌아보면 부끄러운 것밖에 없으나 또 질문하며 내일을 소망합니다.
여러 해 전 시애틀 양문교회 김광훈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며 해주신 얘기에 뜨끔해서 혼이 났습니다. 이런 글을 낭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세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하고 싶은 일, 두 번째는 해야 하는 일, 세 번째는 하나님 만나는 일.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해야 하는 일 다 마치고, 그 후 여유가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줍니다. 하나님은 내게 세 번째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에도 하나님은 세 번째입니다. 내 힘으로 한번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도와 달라고 하고 그래도 안 될 때는 하나님을 부릅니다. 하나님은 내게 세 번째입니다. 친밀감에서도 세 번째입니다. 내게 가까이 있는 것은 내 자신, 그 다음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그 다음에야 저 머~얼~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내게 세 번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나는 첫 번째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부르기만 하면 도와주십니다. 내가 괴로워할 때는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오십니다. 아무도 내 곁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는 홀로 내 곁에 오셔서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언제나 첫 번째입니다. 나도 이제 하나님을 첫 번째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만나서 마음 놓고 울어보고 소리 높여 불러보는 삶의 고비마다 손을 꼭 잡을 수 있는 첫 번째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날 이 얘기를 들으면서 ‘아- 이 글을 쓰신 분의 자기 반성문이구나. 자기 고발장이구나. 그리고 나를 향한 고발장이구나’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얼마나 고발을 당해야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려야 한다는 다짐에 가슴이 뜁니다.
배성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