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나 민족 할 것 없이 역사의 굴곡은 있기 마련입니다. 34장은 유다의 패망에 관한 슬픈 역사 이야기입니다. 유다가 어떤 나라입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신 곳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엎으시겠다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이렇게 패망을 용인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습니다(32:33). 본문에도 거듭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하셨습니다. 이로 보아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들에게 전하시고 싶은 말씀이 많으셨고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주목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시드기야 왕을 비롯해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했고 열심히 듣기도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만 들으려 했습니다. 이로 인한 불순종의 대가는 너무도 컸습니다. 결국 나라는 패망했고 백성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실패한 왕들과 사람들은 대개 시드기야 유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시드기야의 성향이 우리 안에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나 설교를 들을 때도 내가 듣고 싶은 말씀만 듣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늘 하나님을 의식하며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믿고 순종했던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에녹, 노아, 아브라함, 요셉,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선지자들, 그리고 요셉, 마리아, 세례요한, 제자들, 백부장들, 바울… 이들은 모두 ‘아멘의 천재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두고 살았던 분들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에 대한 태도가 이들의 운명을 결정했습니다. 이는 역사에 계속되어왔고 지금도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신앙한다는 것은 곧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물론 타종교를 믿거나 무신론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일 뿐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중대한 오류입니다. 신구약성경이 기독교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인생의 가장 큰 것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 성경의 많은 내용이 역사에 관해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란 곧 인류의 삶의 이야기이며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성인이라고 자부한다면 무턱대고 남이 하는 얘기를 듣고 군중심리를 좇아 기독교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성경을 직접 읽어보고 안 믿어지는 것은 밑줄을 긋고 질문해보아야 합니다. 과학을 탐구하고 지식을 탐구하듯 말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아가 이를 전해야 함은 성도의 사명입니다. 예레미야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자 그는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조금도 지체하거나 주저함없이 전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왜냐면 백성들이 사느냐 죽느냐 나라가 흥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그랬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도다”(행4:20) 그래서 온갖 박해를 당하면서도 성경 내용을 말해주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배성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