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천년의 출발을 맞이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던 때가 엊그제 같았습니다. 그런데 내년이면 벌써 2020년입니다. 세월의 빠름이 엄중하게 느껴집니다. 이 짧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인류는 엄청난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인공지능의 등장이 초기에는 단순 노동 직업군의 소멸을 예측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향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의사의 암 진단만이 아닙니다. 미술, 음악, 소설, 등의 영역에서도 인간다움을 훨씬 넘어서는 능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런 엄청난 변화들이 교회와 목회자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영적 영역이라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명설교자도 필적할 수 없는 컴퓨터 설교자가 등장한다고 합니다. 성도들이 컴퓨터 설교에 은혜를 받을까요?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1990년대 초 예배당 전면에 대형 스크린이 등장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비난하며 반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설교자를 바라보는 것을 시각적으로 편하게 느낍니다. 동영상 설교를 듣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신앙생활을 살고 있습니다. 컴퓨터 설교자의 등장에도 그런 식으로 적응해갈 것입니다. 2천년 교회사에서 있었던 명설교들과 신학논문들을 섭렵한 AI 컴퓨터에 설교주제를 입력하면 매주 명설교가 선포될 것입니다. 그 설교내용에 자기가 존경하는 목회자의 목소리로 합성해서 듣는다면 성도들은 더더욱 친근감을 가지고 감동이 있고 은혜가 넘치는 설교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회자가 강단에 설 기회를 잃어버릴 날이 멀지 않아 보입니다. 성도들이 컴퓨터를 통해 설교를 듣고 많은 헌금들을 선교와 구제에 사용하자는 의견에 적극 찬성할 것입니다. 굳이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가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목회자의 윤리와 도덕성이 신뢰를 잃어버린 이 시대에 컴퓨터 설교자를 선호할 가능성이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컴퓨터 설교자에게는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해 줄지가 우리의 신학적 및 목회적 과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한국교회는 이런 새로운 시대변화가 주는 엄청난 도전에 신학적으로 깊이 있게 그리고 목회적으로 신속하게 준비하고 대응해야 합니다.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요? 아니 대응할 수 있을까요? 혹시 대응할 필요가 없을까요? 아마도 대답은 죽음과 삶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AI 컴퓨터 명설교자가 등장한다 해도 우리의 죽음을 해결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의 증거를 만들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천년 전 십자가 사건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뜨거운 피가 흐르는 우리 가슴에서 나오는 한 마디 기도를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규훈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