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자선’을 꼽는다. 탈무드는 ‘사람이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나, 다만 살아있는 동안 자선을 베푼 것만은 하늘나라로 갖고 간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세계적인 기업을 경영하다 은퇴하고 오로지 자선사업에만 전념하는 유대인 갑부들이 많다. 빌 게이츠, 록펠러 등은 이를 실천해온 유대인들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하늘나라에 갈 때 인정받는 것으로 생각해 열심히 전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성경은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이들의 지혜로움을 칭찬한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도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말씀하신다. 물질은 남의 것이다. 즉 ‘죽을 때 모든 것을 버릴 수밖에 없는, 세상에 속한 것’이라 말씀하시고 이 작은 것에도 실천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참된 것을 맡길 수 있겠느냐고 질문하신다. 집의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으니,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물질만능주의를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현 시대에 참으로 따르기 어려운 말씀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중히 말씀하신다. 기독교 문화가 사회에 뿌리를 내린 미국과 서구 사회에는 이 개념이 쉽게 받아들여져서 기부 문화가 생활화되어 있다. 그리고 세법상으로도 기부한 돈은 세금 공제를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경영학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이 아니라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풍토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라 칭하는 ‘기업의 사회 공헌’에 대한 평가를 중하게 여기는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경영의 목표가 ‘이익 추구’에서 ‘사회와 함께 나누는 것’으로 변화된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요즘 교회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대중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기독교인의 사회적 평판도 그리 좋지 않다. 안티(anti) 크리스천도 생겨나 전도에 큰 장애가 생기고 있다. 교회는 가난한 이웃과 사회에 물질을 써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전도로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이다. 자신의 잔치에만 너무 많은 시간과 물질을 쓴다는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
얼마 전 만난 새 신자 한 분이 말하길, 자신의 어머니를 전도하고 있는데 절대로 교회에 나오지 않으신다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의 여동생과 그 남편이 교회 전도사와 부목사인데, 어머니의 생일에도 교회가 너무 바쁘다며 만나러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께는 전화로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전도한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것이 무척 섭섭하셔서 ‘네가 믿는 예수님은 믿고 싶은데 너를 보면 교회에는 나가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고 한다. 교역자 생활이 가난하니 어머니께 선물을 사 들고 가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이해는 된다만, 비록 작지만 진정성이 담긴 선물과 조그마한 관심이라도 드렸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교회에 헌금을 잘 하는 것은 아주 좋은 한국적 신앙관이지만, 가족과 친척과 가난한 이웃에게 물질을 나누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희가 조그마한 재물에도 충성치 아니하면 하나님이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시겠는가’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속으로 새겨 본다.
강덕영이사장
게시일 : 2021-03-01 11: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