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 이는 자녀의 도리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순종과 공경은 비슷해 보이지만 강조점이 좀 다릅니다. 순종이 정신적인 면을 강조한다면 공경은 실제적이고 물질적인 면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공경없는 순종은 위선이며 순종없는 공경은 형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선과 형식적인 순종과 공경이 비일비재합니다.
순종과 공경이 전제하는 바가 있습니다. ‘주 안에서 하라’입니다. 이는 주님을 생각하며 순종과 공경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끔 유교 사상에 배어있는 이들 중에 기독교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기독교는 조상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마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인 듯싶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 것일 뿐 기독교인들의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그들 못지않습니다. 또 ‘순종과 공경은 옳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는 것입니다. 敎(가르칠 교)는 孝(효도할 효)와 文(글월 문)을 합친 말입니다. 이는 효가 모든 가르침에 우선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효를 모르면 그 배움은 헛것입니다. 십계명에서도 하나님 공경 다음으로 부모를 공경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순종과 공경을 해야 할까요? 순종을 위해서는 부모님께서 말씀하실 때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공손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물론 부모님의 말씀이 다 옳아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공경을 위해선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드리고 자랑스러워하며 필요한 것을 채워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습니다. 일전에 어느 교우 가정에 심방을 갔습니다. 고2 중3 자녀를 둔 가정인데 믿음생활을 잘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오시자마자 가정예배학교도 하시고 온 가족이 함께 가정예배도 잘 드리고 가족 간의 소통도 원활해 보였습니다. 다용도실 쪽엔 워룸도 만들어놓고 하루를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집사님은 비행택시 개발사업을 하는 회사에 연구원으로 있는데 그즈음 이직을 앞두고 마음고생을 좀 했나 봅디다. 어느 날 가정예배 드리는 자리였는데 두 아이가 부모님 용돈이라며 두툼한 봉투를 내밀더랍니다. ‘아빠 그동안 회사 옮기는 과정에서 애쓰셨어요. 엄마와 함께 서울에 좋은 호텔 가셔서 식사하셨으면 좋겠어요’ 하더랍니다. 그 순간 두 분이 울컥했데요. 그 얘길 듣는 저희 내외도 그랬습니다. 기특하지 않아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또 공경은 부모님의 사회적 위치와 상관없이 부모님이 살아오신 길, 오늘의 삶, 부모님의 선택과 이상을 기뻐하고, 있는 그대로를 자랑스러워하는 겁니다. 5월 교회 달력의 글을 보셨지요? 박목월 시인이 어머니를 추억하며 쓴 글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잔뜩 묻어 있습니다. 그리고 음식이나 옷이나 잠자리나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채워드리므로 편안하게 모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셨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잘되게 하시겠다니 얼마나 송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니 반드시 그리하실 것입니다. 이 복된 길을 우리 함께 걸읍시다.
배성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