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모든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이 죽음을 피하기 위한 시도를 역사 이래 계속해왔지만,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이처럼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생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대속물로 오셔서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해주셨고, 영생 부활을 허락하셨습니다.
본문은 첫 부활절에 관한 말씀으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세 가지 반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부활을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평소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로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사흘째 되던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빈 무덤과 두 천사를 목격했습니다. 그때 천사는 여인들을 향해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전하였습니다.
여인들은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렸고 제 삼일에 부활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여인들에게 이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게 된 것은 주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을 허탄하게 여긴 사람들입니다. 당시 사도들이 그랬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대한 여인들의 얘기가
허탄하다고 생각했고 믿지 않았습니다. ‘허탄하다’는 정신착란 상태에서 횡설수설하는 것을 말하는 의학적인 용어입니다.
또한 ‘믿지 아니하다’는 믿기를 계속 거부했다는 뜻입니다. 즉,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했음을 계속 이야기했지만 사도들은
믿기를 거듭 거부했던 것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평소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했다면, 이렇게 거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셋째,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베드로는 여인들의 얘기를 듣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무덤에 갔습니다.
그러나 무덤이 비어 있다는 사실까지는 확인했지만, 확신은 갖지 못했습니다.
사도들은 ‘나는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죽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사도들은 “증거를 믿을 것인가? 또는 보이지 않지만, 주님이 말씀하신 말씀 그대로 믿을 것인가?”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그들은 말씀을 믿는 쪽을 선택했고 그렇게 기독교는 굳건히 여기까지 세워져 오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세 반응은 오늘날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부활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떠한가요?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를 허물려는 많은 시도 속에서도 지금까지 견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믿음의 선배들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
‘죄를 사함 받고 영생 부활을 하게 되었다’라는 확신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 사실을 굳게 믿읍시다.
조금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 믿음 위에 우리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더욱 견고하게 합시다.
배성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