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우리가 겪는 어려운 문제 중 하나는, 불화나 오해, 갈등으로 인해 관계가 깨어졌을 때 이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때 중재는 해결을 위한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본문은 문제를 풀어가는 중재의 방법 중 실패의 예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신앙적 중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합니다.
압살롬의 형을 살해한 잘못과 외할아버지의 나라로 망명해버린 행동으로 악화된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를 위해 군대장관 요압은 중재에 나섭니다. 하지만, 결국 요압의 중재는 성공한 것 같았으나 실패한 중재였습니다. 14장만 보면 요압의 중재는 압살롬의 귀국과 다윗과의 만남으로 성공한 것 같으나 15장 이후 19장까지를 보면 오히려 더 큰 위기를 다윗의 집안과 나라에 임하게 하였습니다.
요압의 중재가 실패한 원인은 한 여인의 거짓 연기로 이뤄진 너무도 인간적인 계략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압의 중재로 다윗이 불편한 마음으로 압살롬의 조건부 귀국을 허락하게 하였고, 압살롬은 귀국 2년 후 다윗과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 반역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로 중재란 참 어려운 일임을 알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중재가 필요한 일이 많고, 중재를 피할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신냉전 시대, 경제적 이익을 따른 블록화, 국내의 진영 간의 다툼, 가족 간의 분쟁과 몰인정 등 참으로 중재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 예수님은 중재자로 오셔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셨고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이 세상에 중재자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후5:18)라고 했습니다. ‘화목’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대표 사역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구원받은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라 말씀하시며 화평을 위해 행동하라 하십니다. 피스메이커(Peacemaker),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기희생을 통해 화평(중재)을 위해 살라 하십니다.
그러면 신앙적 중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첫째, 중재를 위해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제1원칙이며 중재의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인간의 필요를 알 수도, 채울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효과적인 중재를 위해선 듣는 것이 우선돼야 합니다. 감정이 상하면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고집스러워지며 거칠어져 이런 사람의 얘기를 듣는 것은 참으로 곤혹스럽고,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지만, 그의 얘기에 호응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함께 하시며 마음을 만져주시고 때에 맞는 말로 이끄시고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셋째, 그리고 넷플릭스 드라마 버진리버의 해결원칙을 적용해봐도 좋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랑을 표현함으로 적대감을 갖지 말 것, 문제를 피하지 말 것, 문제가 없는 듯이 숨기지 말 것,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 문제 앞에서 솔직할 것’
하나님께서 우리를 중재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피스메이커로 세움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가 가는 곳에는 화목과 평화와 중재가 일어나는 일들을 이루시길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중재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죽음의 운명에 처해 있을 것입니다. 화목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대표 사역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알고 그 길을 걷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배성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