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교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되풀이해서는 안 될 나쁜 본보기라는 뜻인데 최강 국가 바벨론의 쇠망사는 우리의 반면교사가 됩니다.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었던 바벨론 제국이 최단명 제국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복’이라고 하셨습니다(3절). 이는 아주 무섭고 철저하게 이루어졌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을 함부로 대하였습니다(6절). 하나님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지 않고 늙은이에게 멍에를 심히 무겁게 하였습니다. 바벨론은 패배한 유다를 잔인하게 대하였고, 강제 노역에 동원하였습니다. 팝송 ‘Rivers of Babylon(바벨론 강가)’는 시편 137편을 요약한 곡인데 바벨론 포로 때 겪었던 눈물겨운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유다에 여러 번 예언하시며 바벨론을 통해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으면서 그 심판의 도구인 바벨론에게 보복하신 것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유다를 잠시 징계하고 회개하여 돌이키려 하셨는데 바벨론이 유다를 긍휼이 여기지 않고 분수에 넘치게 하나님의 백성을 함부로 대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이 큰 잘못을 하여 징계하셨지만, 그 백성이 처참하게 당하는 것은 못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내 자녀가 아무리 미워도 남이 내 자녀 욕하는 것 못 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함부로 대한 죄는 무섭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백성 된 이들을 함부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말과 행동에 조심하여야 합니다. 인터넷에서라도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를 함부로 욕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바벨론의 오만과 교만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여주인이 되리라 하며 스스로 주인행세를 하였습니다(5, 7절). 또 46장 9절의 하나님의 관용구를 사용하며 스스로 하나님인 듯 교만하게 자신을 표현하였습니다(8절). 자신을 보는 자가 없다고 하며 아무도 자신을 간섭하지 못한다고 건방진 태도를 보였습니다(10절).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향해 재앙과 파멸을 선포하셨습니다(11절). 바벨론의 교만은 당대를 호령하던 앗수르와 하나님의 군대 유다를 전쟁으로 이겼기 때문에 시작됐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인 줄 몰랐기에 교만하였습니다. 전쟁에 이기며 패배한 국가의 엄청난 영토와 부를 챙겨 부족함 없이 하고 싶은 것 다 해서 교만이 하늘을 찔렀을 것인데 이것이 그들의 멸망을 재촉한 것입니다.
사람이나 국가나 내게로 힘이 쏠릴 때, 스스로 의롭다고 여겨질 때 교만해지기 쉬우니 조심해야 합니다. C.S. 루이스는 ‘교만한 사람은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급급해서 위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겸손, 우리는 피조물이요 죄인이요 성도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던 어거스틴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한 모습을 잃지 않아야겠습니다.
배성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