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역사에 큰 의미가 있는 강화도를 성경공부 모임에서 방문한 적이 있었다. 강화도의 선교 역사를 더듬어 보는 시간이었는데 매우 의미있고 유익했다.
1893년 미국 감리교 선교부는 인천 지역 선교사역을 위해 존스 선교사를 파송하고 인천내리교회를 담임하게 했다. 존스 선교사는 인접 섬인 강화도에서도 선교를 시작했으나 그 지역 유지인 김상임이라는 유학자의 결사적인 반대에 부딪쳐 단 한 명도 전도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김상임은 강화도 출신으로 16세에 과거를 보아 초시에 합격한 준재로 성균관에서 수학한 이름 있는 양반이었다. 그리고 강화의 대지주였습니다. 명망도 있고 존경도 받았기에 그의 도움 없이는 선교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존스 선교사는 알게 되었다.
김상임의 반대에 이곳 선교는 정말 어려운 실정이었다. 반면 내리교회에 출석하던 이승환이란 천민도 있었는데 예수를 믿고 확신을 가지니 강화도 고향에 계신 어머니도 예수를 믿도록 전도했고 존스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길 원했다. 그러나 김상임이 반대하니 이승환은 한밤중에 어머니를 업고 갯벌을 지나 존스 목사가 타고 있는 배로 가서 한국 최초의 선상 세례를 받게 했다고 한다.
그 후 존스 선교사는 전도사를 보내 이승환의 집을 거점으로 4~5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도록 했고 이것이 강화도 최초의 감리교회인 교산교회의 시작이었다. 지금도 아담한 교산교회가 강화도의 옛 전통을 자랑하며 예배드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울러 교산교회 성도들의 열심과 올바른 행실에 감명 받은 김상임도 결국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는데 그의 개종은 문중뿐 아니라 강화 전 지역 복음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김상임의 개종은 강화 지역 지도급 인사들이 연이어 개종해 강화 전 지역으로 복음을 확장하는 초석이 되었다. 성령의 역사가 강화도에 강하게 임한 사건이었다.
현재 강화도는 120여 개의 감리교회를 포함해 170개의 교회가 있어 성시화의 좋은 사례가 되고 있으며 선교의 역사가 길고 기독교가 뿌리를 잘 내린 복음화의 고장이 되었다.
이 강화도 선교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천한 자, 낮은 자들을 들어 귀하게 쓰신 것을 알 수 있다. 또 신분이 높은 자를 들어 큰일을 하게 하신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재물을 모으느라 분주하고 많이 모았으나 그 돈은 누가 쓸지는 모른다. 우리가 재능과 능력으로 높은 자리에 올랐으나 언제 없어질지도 모른다. 모두 그림자와 같다”는 성경 말씀이 있다.
우리가 삶의 진정한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 보람 있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믿는다. 강화도 신앙 유적지를 둘러보며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기쁘게 사용되어지길 간절히 기도했다.
강덕영이사장